신문 스크랩 289

수련

수련을 볼 수 있는 때다. 집 근처 공원 연못에 오래 시선을 준다. 수면 위 초록 잎들 사이에 분홍색과 하얀색 꽃송이들이 잔잔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수련이 연꽃과 닮아 보이지만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수련은 수면에 붙어 꽃을 피우고 잎 한쪽이 ‘브이’(V)자로 갈라져 있다. 반면 연꽃은 꽃과 잎이 수면에서 쑥 올라와 있으며 원형의 잎에는 물이 묻지 않고 구슬처럼 또르르 굴러 내린다. 여러 종류의 수련을 모두 연꽃으로 알고 있었고 두 식물을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충 알면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여러 번 들여다본 후에야 수련만의 특성을 알게 되고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게 되었다. 수련의 ‘수’자는 ‘물 수(水)’ 자가 아..

신문 스크랩 2023.06.30

화이부동(和而不同)

우리가 내용도 정확히 모르면서 자주 인용하는 공자 말 중 하나가 “군자 화이부동 (和而不同) 소인 동이불화(同而不和)”이다. 사실 이 말은 공자 리더십론 중에서 핵심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말은 단순히 군자와 소인을 나누는 이분법이 아니라 군자형 리더와 소인형 리더의 이분법이다. 원래 이 말은 ‘논어’ 자로편에 나오는데 바로 뒤에 이를 해설하는 공자 말이 이어진다. “군자는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니, 기쁘게 하기를 도리로써 하지 않으면 기뻐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그 그릇에 맞게 부린다[器之].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쉬우니, 기쁘게 하기를 비록 도리로써 하지 않아도 기뻐하고, 사람을 부리면서도 한 사람에게 모든 능력이 완비되기를 요구한다 [求備].” 군자형 리더..

신문 스크랩 2023.06.24

‘좋은’ 사람을 구분하는 법

결혼 생활의 힘듦을 가장 유머러스하게 말한 사람은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다. “결혼은 힘든 거야. 넬슨 만델라도 이혼했다고! 27년간 감옥에서 고문과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그도 출소 후 6개월 만에 아내와 이혼했다고!” 알랭 드 보통은 ‘독신에는 외로움’이 ‘결혼에는 괴로움’이 있다고 말했는데, 그의 말처럼 인생은 외로움과 괴로움 사이 어느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남녀가 만나 한평생을 해로한다면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산책하는 공원에서 청춘 남녀들보다 아름다운 건 두 손을 잡고 느리게 걷는 노부부의 모습이다. 해질 녘 그 모습을 보면 사람도 좋은 풍경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언젠가 북 콘서트에서 어떤 사람과 결혼하면 좋을지를 묻는 분을 만났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사람마다 ‘..

신문 스크랩 2023.05.20

아들 오열케 한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

유흥가 근처에서 중년의 남성이 쓰러졌다. 술자리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마침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행인에게 발견될 때까지 그는 줄곧 혼자 쓰러져 있었다. 응급실로 실려온 그는 심정지 상태였다. 외상의 흔적도 없었고 심장의 움직임도 없었다. 심폐소생술에도 심전도는 평행선을 그렸다. 돌아오기 어려운 심정지였다. 치명적이지만 여기서는 흔한 일이었다. 심정지가 발생한 모든 사람은 이곳에 모였다. 그리고 심정지 환자 열 명 중 아홉 명은 살아서 이곳을 나갈 수 없었다. 주머니를 뒤져 그의 핸드폰을 찾아 통화 목록을 열었다.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다. 마침 아들로 저장된 번호가 최근 통화에 찍혀 있었다. 연결되지 않았던 마지막 통화는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환자가 전화를 건 뒤 어느 시점에 ..

신문 스크랩 2023.04.20

감사하면서 살면 장수하는 이유

“감사한다는 것은 인생을 선물로 느끼는 능력(ability to experience life as a gift)이다. 감사함은 자기 집착의 감옥에서 해방시켜준다(liberate you from the prison of self-preoccupation).” – 미국 종교인 존 오트버그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대하다 보면(face life with a grateful heart) 더 오래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live a longer and happier life) 한다. 영국의 신경과학자(neuroscientist)이자 정신과 의사(psychiatrist)인 데이브 래빈 박사에 따르면, 감사 표현을 습관화한(make it a practice to express their gratitude) 사람은 ..

신문 스크랩 2023.04.20

한국인들의 명품 강박관념과 허세

“가진 것 있으면 잘난 척해라(flaunt it). 없으면 갖게 될 때까지(till you make it) 허세를 부려라(fake it).” 필리핀 매체 인콰이어러가 ‘돈 자랑하기 경쟁(A race to flex). 한국에선 왜 부유함을 뽐내는(show off wealth) 것이 미덕(virtue)일까’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 일부다. 낯 뜨겁게(feel shameful) 하는 내용 일색이다. “겉치레가 우선인 한국에선 부자임을 으스대거나(boast of riches), 최소한 부자인 것처럼 보이는(at least be seen as rich) 것이 황금률(golden rules)인 듯하다. 한국인들의 유명 상표 강박관념(obsession with designer labels)은 기가 차서 말문이 막힐..

신문 스크랩 2023.03.29

친절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물은 사람이 있었다. 축사에서 감히 후회라니. 도전과 성공, 개척 정신과 용기, 연사가 이룬 성취에 대해 말하는 게 축사 아니던가? 후회에 대해 말한 사람은 미국의 소설가 조지 손더스다. 시러큐스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맥아더 상의 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2013년 시러큐스대학교의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다. 가장 후회하는 것은 친절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중학교 때 놀림받던 여자아이를 떠올리며, 그 애가 모욕당하는 걸 보고만 있었다면서. 여자아이를 조금 편들기는 했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어느 날, 여자아이는 사라진다. 가족들과 이사를 갔기 때문에. 비극도 없었고, 결정적인 사건도 없었다. 하지만 여자아이가 마음에 남..

신문 스크랩 2023.03.02

어머니와 딸의 마지막 전화통화

코로나로 임종 앞둔 할머니의 딸 “엄마와 통화하고 싶어요. 부탁해요” 환자 귀에 수화기 댔지만… “다 듣고 떠나셨어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코로나 감염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했다. 집에서 지내던 고령의 할머니였다. 의식이 있었으나 가쁜 숨을 내쉬느라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고열과 기침까지 동반해 코로나 감염의 전형적인 악화 양상이었다. 몸이 전반적으로 말라 평소에도 거동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하얀 방역복을 입고 보안 고글을 쓴 채 환자를 격리 치료실로 넣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힘겹게 호흡하는 모습이 나쁜 예후를 짐작게 했다. 할머니는 혼자 삶을 건사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했다. 하지만 응급실에 온 건 할머니뿐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딸도 코로나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사흘 전 가족 한 명이 확진된 ..

신문 스크랩 2023.03.02

건강에 가장 좋은 잠자는 자세는?

새벽까지 몸을 뒤척이며(toss and turn until the wee hours) 잠을 설치는(sleep fitfully) 수면 장애로 고생하는(suffer from sleep disorder) 이가 적지 않다. 그런데 잠자는 자세를 조금만 바꾸면, 혈액순환을 향상시키고(improve your circulation), 요통을 완화하면서 코골이도 방지해(prevent snoring) 숙면을 취할(have a goodnight’s sleep) 수 있다고 한다. /일러스트=최정진 미국의 건강 매체 ‘The Healthy’에 따르면, 골칫거리인 수면 문제의 진범(real culprit of your troublesome sleep problem)은 이부자리나 침대 매트리스가 아니라 최적의 수면 자세로 잠자지..

신문 스크랩 2023.03.02

통제와 감시의 그물

그물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시선이 착잡하다. 뭔가를 가두거나 잡아들일 때 쓰는 물건인 까닭이다. 그물을 가리키는 대표적 한자는 망(網)과 라(羅)다. 둘의 생김새는 비슷하다. 굳이 가르자면 ‘망’은 물고기, ‘라’는 새를 잡는 그물이다. 둘을 합쳐 ‘모두를 포함하다’는 뜻의 망라(網羅)로 적지만 본래 그 차이는 확연치 않았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넓어, 성긴 듯해도 놓치지는 않는다(天網恢恢, 疏而不失)”는 ‘도덕경(道德經)’ 속 노자(老子)의 유명 언급을 보면 그렇다. 노자의 이 말은 자연의 법칙, 사람의 도리(道理) 등을 강조한 내용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을 저지른 사람은 그에 맞는 징벌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요즘 중국인이 잘 쓰는 성어 천라지망(天羅地網)은 통제의 엄격함을 지칭한다. 중국어의..

신문 스크랩 202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