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을 볼 수 있는 때다.
집 근처 공원 연못에 오래 시선을 준다.
수면 위 초록 잎들 사이에 분홍색과 하얀색 꽃송이들이 잔잔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수련이 연꽃과 닮아 보이지만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수련은 수면에 붙어 꽃을 피우고 잎 한쪽이 ‘브이’(V)자로 갈라져 있다.
반면 연꽃은 꽃과 잎이 수면에서 쑥 올라와 있으며 원형의 잎에는 물이 묻지 않고
구슬처럼 또르르 굴러 내린다.
여러 종류의 수련을 모두 연꽃으로 알고 있었고 두 식물을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충 알면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여러 번 들여다본 후에야 수련만의 특성을 알게 되고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게 되었다.
수련의 ‘수’자는 ‘물 수(水)’ 자가 아닌 ‘잠잘 수(睡)’를 쓴다.
아침 햇살에 꽃잎을 열었다가 오후 두세 시 이후 서서히 잎을 오므리고 잠을 자는
특성이 있어 붙은 이름이라 한다.
한낮에 핀다 해서 ‘자오련’이라고도 부르고 오후 한 시에서 세 시를 가리키는
미시(未時)에서 따와 ‘미초(未草)’라고도 한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자신의 정원에 인공 연못을 파고 수련을 심은 후 30년간
그림으로 담아 250여 점의 수련 연작을 만들어 냈다.
잠자는 꽃을 그려내는 모네의 열정은 쉽게 잠들지 않았다.
백내장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빛에 따라 달라지는 수련의 색과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붓을 놓지 않았다.
선명한 수련에서부터 형체가 일그러진 수련까지, 같은 수련이라도 모네는 매 순간
다른 수련을 표현해냈다.여러 번 보고 또 보는 태도에 대해 생각한다.
식물이든 사람이든 그 속의 섬세한 결을 읽어내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신중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각각의 마음이 가진 빛깔과 향기가 다 달라서 한두 번 본 것으로 상대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섣부른 추측은 오해와 편견을 낳을 수 있다.
모네의 ‘대상을 보는 새로운 눈’과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태도’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조선일보 오피니언(임미다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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