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모음 518

봄/윤동주

아래는 윤동주 시인 봄이라는 시를 조선일보 지면에서 옮겨 봅니다. (前略)시의 첫 행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라는 구절은 아주 감미롭다.시냇물이 돌돌 소라를 내고 흐르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혈관 속에도봄이 시내처럼 흐른다고 상상했다.윤동주가 창조한 이 아름다운 시구를 내 혈관 속에 새겨 두고 싶다.시냇가 언덕에 개나리.진달래.배추꽃이 피어나는 정경을 보고 그 자신도 '풀포기처럼 피어난다'고 했다.자연 경관이 그의 마음에 들어와 자신과 하나가 된 것이다.윤동주 시에서 드물게 보는 아름다운 봄의 육감적 표현이다.그의 혈관 속에 봄이 시내처럼 흐르고 그의 마음과 몸이 꽃처럼 피어나자흥겨운 마음이 종달새를 부른다.봄이면 보립밭 위로 솟아올라 정겹게 지저귀던 그 종달새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푸..

詩 모음 2025.04.16

초혼(招魂)

초혼(招魂)        -김소월 -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이름이여붉은 해가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선 채로 이 자리에돌이 되어도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초혼(招魂)은 사람이 죽었을 때 그 혼(魂)을 소리쳐 부르는 것을 말한다.소월이 사랑하는 이(오순)를 떠나 보낸 비탄과 절망감을 격정적인 어조로절절하게 표현한 시(詩)이다.

詩 모음 2025.03.15

용서를 위한 기도 - 이해인

용서를 위한 기도                           - 이해인 그 누구를 그 무엇을용서하고 용서받기 어려울 때마다십자가 위의 당신을 바라봅니다가장 사랑하는 이들로부터이유 없는 모욕과 멸시를 받고도피 흘리는 십자가의 침묵으로모든 이를 용서하신 주님용서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용서는 구원이라고오늘도 십자가 위에서조용히 외치시는 주님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기엔죄가 많은 자신임을 모르지 않으면서진정 용서하는 일은 왜 이리 힘든지요제가 이미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아직도 미운 모습으로 마음에 남아저를 힘들게 할 때도 있고깨끗이 용서받았다고 믿었던 일들이어느새 어둠의 뿌리로 칭칭 감겨와저를 괴롭힐 때도 있습니다조금씩 이어지던 화해의 다리가제 옹졸한 편견과 냉랭한 비겁함으로끊어진 적도 많습..

詩 모음 2025.02.09

아버지의 마음

바쁜 사람들도굳센 사람들도바람과 같던 사람들도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어린것들을 위하여난로에 불을 피우고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세상이 시끄러우면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폭탄을 만드는 사람도감옥을 지키던 사람도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 –

詩 모음 2025.02.05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고 할 때..

가끔은 삶이 아프고 외롭고 할때.. 참지 말아라그러다 마음의 병이 된다아니된다 생각되면즉시 마음 돌려라한번 아닌 일은끝까지 아니더라요행을 바라지 마라세상엔 요행이란 글자가참 무서운 것이더라아프냐그럼 아픈 만큼더 열심히 살아라세상에는 너보다 훨씬큰 아픔을 안고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단다이 세상에안 아픈 사람들은 없단다 그 아픔을 어떻게이겨나가는 가는자신에게 달려 있다아픔도 슬픔도 꼭필요하기에신이 우리에게 부여했을지도그저 살아 있음에누릴 수 있는 지상 최대의선물이라고 생각하자이 선물을 곱게 받아들여잘 이겨 나가자매일 쨍쨍한 날씨라면얼마나 덥겠느냐시원한 소낙비도무더운 여름엔 꼭 필요하듯아픔.슬픔.고독.외로움이란것도삶의 꼭 필요한 선물이더라사연없는 사람 없고아픔없는 사람 없다힘들거든우리 쉬어서 가자.- 김옥림의 "..

詩 모음 2025.02.04

인생

보았으나보지 않은 것처럼들었으나듣지 않은 것처럼말했으나말하지 않은 것처럼행했으나행하지 않은 것처럼알았으나알지 못한 것처럼몰랐으나모르지 않은 것처럼주었으나주지 않은 것처럼받아야 하나받을 게 없는 것처럼뜨거우나뜨겁지 않은 것처럼 외로우나외롭지 않은 것처럼기대했으나기대하지 않은 것처럼서운했으나서운하지 않은 것처럼놓쳤으나놓치지 않은 것처럼이뤘으나이루지 않은 것처럼없으나없지 않은 것처럼있으나있지 않은 것처럼아프나아프지 않은 것처럼인생은 이렇듯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적당히 사는 거라 하네인생아너 참 어렵다인생 / 박선아

詩 모음 2025.01.31

어느 노인의 고백 -이 해인

어느 노인의 고백 -이 해인  하루 종일창밖을 내다보는 일이 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누가 오지 않아도 창이 있어 고맙고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벗이 됩니다. ​내 지나온 날들을 빨래처럼 꼭 짜서 햇살에 널어두고 싶습니다. ​바람속에 펄럭이는 희노애락이 어느새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네요. ​이왕이면 외로움도 눈부시도록 가끔은 음악을 듣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전 내가 용서할 일도 용서받을 일도 참 많지만 너무 조바심하거나걱정하진 않기로 합니다. ​죽음의 침묵은 용서하고 용서 받는거라고 믿고 싶어요. ​고요하고 고요하게 하나의 노래처럼한잎의 풀잎처럼 사라질수 있다면 난 잊혀저도 행복할거예요.

詩 모음 2024.12.11

단풍 너를 보니/법정스님

단풍 너를 보니                 ㅡ법정스님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가슴을 태우다 태우다이렇게도 붉게 멍이 들었는가한창 푸르를 때는늘 시퍼를 줄 알았는데가을바람 소슬하니하는 수 없이 너도옷을 갈아 입는구나붉은 옷 속 가슴에는아직 푸른마음이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나도 너처럼늘 청춘일줄 알았는데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세월이 야속하다 여겨지네세월따라 가다보니육신은 사위어 갔어도아직도 내 가슴은이팔청춘 붉은 단심인데몸과 마음이 따로노니주책이라 할지도 몰라그래도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제일 멋지지 아니한가이왕 울긋불긋색동 옷을 갈아 입었으니온 산을 무대삼아실컷 춤이라도 추려무나신나게 추다보면흰바위 푸른솔도손뼉 치며 끼어 들겠지기왕에 벌린 춤미련 없이 너를 불사르고온 천지를 붉게 활활불 태워라삭풍이 부는겨울이 ..

詩 모음 2024.10.28

가을

가을  기쁨을 따라갔네작은 오두막이었네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살짝 가 보았네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눈물을 줍고 있었고뒤에 있던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산이 말했네어서 가 보게, 그대의 집으로……                 -강은교(1945-) 오두막에 슬픔과 기쁨이, 이 둘이 살고 있는데 번갈아 집을 지킨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집에 오막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가을에는 찬바람이 불어 쓸쓸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니 세상의 모든 집이 오두막집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도 시월의 오두막에 살짝 가서 보았다. 조랑조랑 매달린 감이 발그스름하게 익고 감잎이 물들고, 석류도 익어 껍질이 쩍 ..

詩 모음 2024.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