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모음 497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나태주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아무 것에게나 함부로 맡기지 말아라 술한테 주고 잡담한테 주고 놀이한테 너무 많은 자기를 주지 않았나 돌아다 보아라. 가장 나쁜 것은 슬픔한테 절망한테 자기를 맡기는 일이고 더욱 좋지 않은 것은 남을 미워하는 마음에 자기를 던져버리는 일이다 그야말로 그것은 끝장이다 그런 마음들을 모두 거두어 들여 기쁨에게 주고 아름다움에게 주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에게 주라 대번에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젊어지다 못해 어려질 것이고 싱싱해질 것이고 반짝이기 시작할 것이다 자기를 함부로 아무것에나 주지 말아라 부디 무가치하고 무익한 것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말아라 그것은 무익한 일이고 눈 감은 일이고 악덕이며 죄 짓는 일이다 가장 아깝고 소중한 것은 자기..

詩 모음 2024.03.10

산수유 꽃 진 자리 - 나태주

산수유 꽃 진 자리 나태주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누구에겐가 말해주긴 해야 했는데 마음 놓고 말해줄 사람 없어 산수유 꽃 옆에 와 무심코 중얼거린 소리 노랗게 핀 산수유 꽃이 외워두었다가 따사로운 햇빛한테 들려주고 놀러온 산새에게 들려주고 시냇물 소리한테까지 들려주어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차마 이름까진 말해줄 수 없어 이름만 빼고 알려준 나의 말 여름 한 철 시냇물이 줄 창 외우며 흘러가더니 이제 가을도 저물어 시냇물 소리도 입을 다물고 다만 산수유 진자리 산수유 열매들만 내리는 눈발 속에 더욱 예쁘고 붉습니다.

詩 모음 2024.03.05

여기 이 한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여기 이 한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전화기를 들면 손가락이 자꾸 쏠리는 전화번호를 가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저분한 내 방에 청소했답시고 한번 초대해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병들어 아파할때 병문안을 와줬음 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끔은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기다렸다가 놀란 얼굴을 짓게 하고픈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눈 내리는 날 2층 커피솦 문턱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무작정 기다리고픈 한 사람이 있습니다. 복잡한 주말 늦은 오후 많은 사람들 중에 혹시나 있을까 찾아보고픈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밤을 꼬박 같이 새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애타게 이끄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만드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괜히 앞에선 수줍어지고 어느때와는 그 감정이 달랐던 한 사..

詩 모음 2024.02.17

2월의 詩 / 이해인

2월의 詩 이해인 하얀 눈을 천상의 시처럼 이고 섰는 겨울나무 속에서 빛나는 당신 2월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벽마다 당신을 맞습니다 답답하고 목마를때 깎아먹는 한조각 무맛 같은 신선함 당신은 내게 잃었던 꿈을 찾아줍니다 다정한 눈길을 주지못한 일상에 새옷을 입혀줍니다 남이 내게 준 고통과 근심 내가 만든 한숨과 눈물 속에도 당신은 조용한 노래로 숨어있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라는 우리의 인사말 속에서도 당신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또다시 당신을 맞는 기쁨 종종 나의 불신과 고집으로 당신에게 충실치 못했음을 용서하세요 새해엔 더욱 청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詩 모음 2024.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