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온 글 모음 159

사소십다(四少十多)

옛날에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치르러 한양으로 가는 도중 날이 저물어여관에서 하루를 숙박하게 되었다.하루종일 걷다 보니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져든다.이틀은 더가야 한양인데... 그날밤 꿈을 꾸었다.연거푸 세 번이나 꿈을 꾸었다.첫 번째 꿈은 벽 위에 배추를 심는 것이었고,두 번째 꿈은 비가 오는데 두건을 쓰고 우산을 쓰고 있는 꿈이었으며,세 번째 꿈은 마음으로 사랑하던 여인과 등을 맞대고 누워있는 것이었다.세 꿈이 다 심상치 않아 점쟁이를 찾아가서 물었더니 점쟁이 하는 말이''벽 위에 배추를 심으니 헛된 일을 한다는 것이고,두건을 쓰고 우산을 쓰니 또 헛수고한다는 것이며,사랑하는 여인과 등을 졌으니 그것도 헛일이라는 것이니  어서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소."라고 해몽을 해 주었다. 점쟁이의 말을 ..

부모는 뿌리

부모와 함께 이해에 도달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구르지예프는 ‘부모와 원만히 소통하지 못한다면 삶을놓친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부모와의 사이에 어떤 분노가 자리를 잡고 있다면,그대는 결코 편치 않을 것이다.어디에 있더라도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용서하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부모는 그저 단순한 사회적 관계가 아니다.그대는 그들로부터 태어났다.그대는 그들의 일부분이다.그대는 부모라는 큰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이다.그대는 여전히 그들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부모가 죽으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던 뭔가가 그대 안에서 죽는다.부모가 죽으면 그대는 난생 처음으로 뿌리가 뽑히고 홀로되었다고 느낀다.그러므로 그들이 살아있을 때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드려라.그래야 이해가 생기고 그들과 소통할 수 ..

마음의 작용(우암 송시열과 미수 허목)

일체 법은 깨친 사람이 보면 그냥 부처님 법이지만깨치지 못한 사람이 보면 그대로 칼날이 될 수 있다. 숙종 때의 학자 우암 송시열이 금강산 구경을 갔다. 그는 구룡연 폭포 앞에 서서 이백오십여 척이나 되는 높다란 산봉우리에서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려오는 은빛 물기둥과 물보라를 보고 마치 산이 찡그리고 물이 성내는 것과 같다고 시를 읊었다. 같은 시대 사람인 허목 허미수 역시 구룡연 폭포를 두고 시를 지었다. 그러나 그는 송시열과는 달리 폭포의  물기둥과 물보라가 너울거리는 한 폭의 비단 같다고 했다. 같은 폭포를 두고 두 사람은 어떻게 그리 다르게 보았을까?송시열은 마음에 진심(성내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폭포에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며 그 진심이 원인이 되어 말년에는 사약을 받고 죽게 되었다. 허목은..

솔로몬 왕(King Solomon)의 述懷(술회)

솔로몬 왕(King Solomon)의 述懷(술회)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다윗의 아들로 이스라엘을 40년 간 다스리며 절대 권력왕은 富貴榮華(부귀영화)를 누린 것 뿐만 아니라 일찍이 세기의 철학자요,예술가며,예언가 이자 종교지도자였던 솔로몬 왕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인생을 술회하고 세상을 떠났다. 솔로몬 왕이 인생에서 좋다는 것을 다 누려본 뒤 傳道書(전도서)에 남긴메시지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이다. 지혜로운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도,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다 죽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謙虛(겸허)하라는 것이다.사람이 능력이 있다고, 잘 나간다고, 또 열심히..

연륜(年輪)과 경륜(經綸)

연륜(年輪)과 경륜(經綸)고려장(高麗葬) 나이 든 노인을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 버려두고오는 이 없어진 유래 고려장(高麗葬)은 고려인(高麗人) 이 효도심(孝道心)이없어서 있었던 일인가?고려장(高麗葬) 풍습이 있던 고구려 때 박정승은 노모를 지게에 지고산으로 올라갔습니다.그가 눈물로 절을 올리자 노모는"네가 길을 잃을까봐 나뭇가지를 꺾어표시를 해두었다."라고말합니다.박정승은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생각하는 노모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몰래 국법을 어기고 노모를 모셔와 봉양(奉養)을 합니다.그 무렵 중국 수(隋)나라 사신이 똑같이 생긴 말 두 마리를 끌고 와어느 쪽이 어미이고 어느 쪽이 새끼인지를 알아내 라는 문제를 냅니다못 맞히면 조공(朝貢)을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로 고민하는 박정승에게 노모가 해결책..

오복(五福) 이야기

오복(五福) 이야기  옛날부터 사람이 살아가면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다섯 가지의 복을오복(五福)이라고 했습니다.  중국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에 나오는 오복(五福)을 보면,  ●첫번째는 수(壽)로서천수(天壽)를 다 누리다가 가는 장수(長壽)의 복(福)을 말했고,  ●두번째는 부(富)로서살아가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운 부(富)의 복(福)을 말했으며,  ●세번째는 강령(康寧)으로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福)을 말했다고 합니다.  ●네번째는 유호덕(攸好德)으로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福)을 말했고,  ●다섯번째는 고종명(考終命)으로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福)을 말했다고 ..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행복(幸福)한 사람이다

건강(健康)한 사람이 가장 행복(幸福)한 사람이다  인생의 7할을 넘게 걸어왔고 앞으로 삶이 3할도 채 안 남은 지금내 남은 생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노인이 되는 것이다.나이가 들어 늘어나는 검버섯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옷을 깔끔하게 입고남의 손 빌리지 않고 내 손으로 검약한 밥상을 차려 먹겠다.눈은 어두워져 잘 안보이겠지만,보고 싶은 것만 보는 편협한 삶을 살지는 않겠다. 약해진 청력으로 잘 듣진 못하겠지만,항상 귀를 열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따뜻한 사람이 되겠다.성한 이가 없어 잘 씹지도 못하겠지만,꼭 필요한 때만 입을 열며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겠다. 다리가 아파 잘 못 걸어도 느린 걸음으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여행지에서 만난 좋은 것들과좋은 사람들에게 배운 것을 실천하..

지배욕은 열등감에서 나온다.

지배욕은 열등감에서 나온다.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불확실과 두려움으로 인해 지배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유명한 동양의 우화가 있다.어느 장님이 나무 아래 앉아있었다.왕이 다가가서 그의 발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그대여, 수도로 가는 길이 어디인가?” 왕의 총리대신이 다가가서 장님의 발을 어루만지지 않은 채 말했다.“선생님, 수도로 가는 길이 어디인가요?” 다음으로 사령관이 다가와서는 장님을 툭 치며 말했다.“이봐, 수도로 가는 길이 어디야?”왕의 일행이 길을 잃었다. 그들이 모두 가고 나서 장님은 웃기 시작했다.그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물었다.“왜 웃는 거요?”“보게. 첫 번째 사람은 왕이었을 것이고,두 번째 사람은 총리대신이었을 것이네.그리고 세 번째 사람은 가련한 사령관이었을 거네.” 그가 ..

말이 씨가 되다.

말이 씨가 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아궁이에 장작 넣으랴,주걱으로 가마솥의 조청 저으랴,바쁜 와중에도 추실댁의 머릿속은 선반 위의 엿가락 셈으로 가득 찼다.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그저께 팔다 남은 깨엿 서른세가락을 분명 선반 위에 얹어 뒀건만,엿기름 내러 한나절 집을 비운 사이 스물다섯 가락밖에 남지 않았으니 이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방에는 열한살 난 아들밖에 없고,그 아들은 앉은뱅이라서 손을 뻗쳐 봐야 겨우 문고리 밖에 잡을수 없는데, 어떻게 엿가락이 축날 수 있단 말인가!추실댁은 박복했다.시집이라고 와 보니 초가삼간에 산비탈 밭 몇마지기뿐인 찢어지게가난한 집안에다 신랑이란 게 골골거리더니 추실댁 뱃속에 씨만 뿌리고,이듬해 덜컥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장사를 치르고 이어서 유복자를 낳았다.유복..

조선조 500년 '최고의 순애보' - 고죽(孤竹) 최경창과 홍랑

선조 6년(1573년) 가을, 어느 날 함경도 땅 홍원에서 처음 만난 순간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엮여지게 되었다. 남자는 영암 출신으로 문관인 시인인 최경창(崔慶昌), 여자는 홍원 관아 기생인 홍랑(洪娘)이다.​그때 홍랑은 나이 열 예닐곱의 갓 피어나는 처녀 몸이었지만, 고죽(孤竹) 최경창은 그보다 17, 8살이나 많은 34살의 중년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나이차를 가볍게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시(詩)와 음악이었다. 29살 때인 선조 원년(1568년)에 문과에 급제한 최경창은 당대의 문인 이율곡, 정철, 이산해, 양사언 등과 어깨를 나란히 교유하며 시와 문장으로 문명을 떨치고 있었다.그의 청절하고 담백한 시풍은 멀리 중국에까지 알려졌을 정도였다. 危石纔敎一逕通(위석재교일경통) 큰 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