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스크랩

친절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highlake(孤雲) 2023. 3. 2. 12:46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물은 사람이 있었다. 축사에서 감히 후회라니. 도전과 성공, 개척 정신과 용기, 연사가 이룬 성취에 대해 말하는 게 축사 아니던가? 후회에 대해 말한 사람은 미국의 소설가 조지 손더스다. 시러큐스대학교의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맥아더 상의 수상자이기도 한 그는 2013년 시러큐스대학교의 졸업식 축사에서 말했다.

 

가장 후회하는 것은 친절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중학교 때 놀림받던 여자아이를 떠올리며, 그 애가 모욕당하는 걸 보고만 있었다면서. 여자아이를 조금 편들기는 했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어느 날, 여자아이는 사라진다. 가족들과 이사를 갔기 때문에. 비극도 없었고, 결정적인 사건도 없었다. 하지만 여자아이가 마음에 남았다. 그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게 걸린다고 말한다. 내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누군가가 괴롭힘을 당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나는 오직 나 자신만의 안전을 추구해 왔고, 그게 가끔 괴롭다.

 

친절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합니다. 이렇게 말한 후 그는 청중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따뜻한 감정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단언컨대, 여러분에게 더없이 친절했던 사람일 거라고,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다. 유난한 사랑을 베푸셨던 선생님,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느끼게 해준 선배, 마음에 남는 말을 해줬던 친구… 많은 것이 희미해졌지만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코끝이 시큰해진다. 한편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기도 할까? 나한테 친절했던 사람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친절했던 적이 있었나?

그건 내가 알 수 없다. 단지 내게 특별하게 남은 사람들을 기억할 뿐이다. 많은 기억 중에 작년의 일을 말하고 싶다. 이름을 모르는 어떤 남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의 직업만 안다. 지하철 4호선의 기관사. 나는 그의 목소리를 세 번쯤 들었다. 더 들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건 그 정도다.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지하철의 스피커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승객에게 말을 건네는 기관사가 그저 신기했다. 그런 건 영화에서나 보던 거라서. 내용은 거의 듣지 못했다. 하지만 매우 정성스럽게 쓰고, 고치고, 연습해서, 이렇게 읽고 있다는 건 전해졌다. 나는 기관사가 다시 말을 건네는 순간을 만나게 되길 기다렸다.

어느 날, 그 순간이 찾아왔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던 그 기관사였다. 그 말을 듣다가 나는 멍해졌고, 울컥했고, 세상이 그래도 살 만하다고 생각했다. 한 단어 한 단어가 소중해서 기억하고 싶었지만 바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다시 그 순간이 찾아오길 기다렸다. 내가 매일 지하철 4호선을 타는 것도 아니고, 그 기관사가 내가 탈 때마다 배차되는 것도 아니기에 매우 희박한 경우의 수를 뚫어야 했다. 어쩌면 영원히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쩐지 꼭 그럴 것 같았다.

나의 기대는 보답받았다. 타이밍도 완벽했다. 노트북을 펴놓고 글을 쓰던 중에 그 순간이 찾아왔다. 매우 희귀한 것을 보고 있다는 흥분을 느끼면서 나는 받아적기 시작했다. 시대 친화적인 사람이라면 휴대폰의 녹음 버튼을 누를 텐데 그런 사람은 못 되므로. 기회가 된다면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받아적었다. 이제 받아적은 기관사의 목소리를 옮겨 보겠다.

 

"늦더위에 얼마나 고생 많으십니까? 잠시 휴대폰은 내려놓고 창밖의 풍경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근심과 걱정이 있으시면 모두 다 열차에 내리고 가시길 바랍니다. 지금 비록 코로나19로 힘드시겠지만, 이것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마음만은 평화가 가득하시길 바라며,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 말을 받아적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대폰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저 중에 몇 명이나 기관사의 목소리를 들었을지 궁금했다. 몇 명이나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창밖의 풍경을 봤을지도. 그분이 이 글을 보실 가능성은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적어본다. 건강 조심하시고, 마음만은 평화가 가득하시길 바라며,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덕분에 이렇게 지나왔습니다.

                   <조선일보오피니언(한영은의 느낌의 세계) 중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