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모음 511

여기 이 한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여기 이 한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전화기를 들면 손가락이 자꾸 쏠리는 전화번호를 가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저분한 내 방에 청소했답시고 한번 초대해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병들어 아파할때 병문안을 와줬음 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가끔은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기다렸다가 놀란 얼굴을 짓게 하고픈 한 사람이 있습니다. 눈 내리는 날 2층 커피솦 문턱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무작정 기다리고픈 한 사람이 있습니다. 복잡한 주말 늦은 오후 많은 사람들 중에 혹시나 있을까 찾아보고픈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밤을 꼬박 같이 새보고 싶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애타게 이끄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만드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괜히 앞에선 수줍어지고 어느때와는 그 감정이 달랐던 한 사..

詩 모음 2024.02.17

2월의 詩 / 이해인

2월의 詩 이해인 하얀 눈을 천상의 시처럼 이고 섰는 겨울나무 속에서 빛나는 당신 2월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벽마다 당신을 맞습니다 답답하고 목마를때 깎아먹는 한조각 무맛 같은 신선함 당신은 내게 잃었던 꿈을 찾아줍니다 다정한 눈길을 주지못한 일상에 새옷을 입혀줍니다 남이 내게 준 고통과 근심 내가 만든 한숨과 눈물 속에도 당신은 조용한 노래로 숨어있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라는 우리의 인사말 속에서도 당신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또다시 당신을 맞는 기쁨 종종 나의 불신과 고집으로 당신에게 충실치 못했음을 용서하세요 새해엔 더욱 청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詩 모음 2024.02.03

플랑드르 들판에서

플랑드르 들판에서 - 존 매크레이 플랑드르 들판에 양귀비꽃이 피었네 줄줄이 늘어선 우리들 자리를 표시한 십자가들 사이로 하늘에선 종달새 날며 힘차게 노래하지만, 지상의 총소리에 묻혀 드문드문 들릴 뿐. 우리는 이제 죽어 지상에 없네. 불과 며칠 전까지 우리는 살아서 새벽을 느꼈고 불타는 석양을 보았지 사랑했고 사랑 받았고 그러나 이제는 누워있네. 플랑드르 들판에. 우리가 벌였던 적과의 싸움을 이어주게 죽어가며 우리가 이 횃불을 그대들에게 던지네. 그대 손으로 높이 들기를 그대들이 목숨바친 우리의 신의를 저버린다면 우리는 잠들지 못하리 비록 양귀비꽃 필지라도 플랑드르 들판에. 參考 : 캐나다의 군의관이자 시인인 존 매크레이(1872~1918)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이 처절한 전투를 벌였던 벨..

詩 모음 2023.12.21

인생은 구름이고 바람인 것을

인생은 구름이고 바람인 것을 - 이해인 - 누가 날 더러 청춘이 바람이냐고 묻거든 나, 그렇다고 말하리니 그 누가 날더러 인생도 구름이냐고 묻거든 나, 또한 그렇노라고 답하리라 왜냐고 묻거든 나, 또 말하리라. 청춘도 한 번 왔다 가고 아니오며 인생 또한 한 번 가면 되돌아 올 수 없으니 이 어찌 바람이라 구름이라 말하지 않으리오 오늘 내 몸에 안긴 겨울 바람도 내일이면 또 다른 바람이 되어 오늘의 나를 외면하며 스쳐가리니 지금 나의 머리 위에 무심히 떠가는 저 구름도 내일이면 또 다른 구름이 되어 무량세상 두둥실 떠가는 것을 잘 난 청춘도 못 난 청춘도 스쳐가는 바람 앞에 머물지 못하며 못 난 인생도 저 잘 난 인생도 흘러가는 저 구름과 같을진대 어느 날 세상 스쳐가다가 또 그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

詩 모음 2023.11.23

단풍 너를 보니

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 가슴을 태우다 태우다 이렇게도 붉게 멍이 들었는가 한창 푸르를 때는 늘 시퍼를 줄 알았는데 가을바람 소슬하니 하는 수 없이 너도 옷을 갈아 입는 구나 붉은 옷 속 가슴에는 아직 푸른 마음이 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 나도 너처럼 늘 청춘일 줄 알았는데 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 세월이 야속하다 여겨지네.... 세월 따라가다 보니 육신은 야위어 갔어도 아직도 내 가슴은 이팔 청춘 붉은 단심인데 몸과 마음이 따로 노니 주책이라 할지 몰라 그래도 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 제일 멋지지 아니한가 이왕 울긋불긋 색동옷을 갈아 입었으니 온 산을 무대 삼아 실컷 춤이라도 추려무나 신나게 추다 보면 흰 바위 푸른 솔도 손뼉 치며 끼어 들겠지 기왕에 벌린 춤 미련 없이 너를 불사르고 온 천지를 붉게 활활..

詩 모음 202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