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모음 511

어느 노인의 고백 -이 해인

어느 노인의 고백 -이 해인  하루 종일창밖을 내다보는 일이 나의 일과가 되었습니다. ​누가 오지 않아도 창이 있어 고맙고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벗이 됩니다. ​내 지나온 날들을 빨래처럼 꼭 짜서 햇살에 널어두고 싶습니다. ​바람속에 펄럭이는 희노애락이 어느새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네요. ​이왕이면 외로움도 눈부시도록 가끔은 음악을 듣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전 내가 용서할 일도 용서받을 일도 참 많지만 너무 조바심하거나걱정하진 않기로 합니다. ​죽음의 침묵은 용서하고 용서 받는거라고 믿고 싶어요. ​고요하고 고요하게 하나의 노래처럼한잎의 풀잎처럼 사라질수 있다면 난 잊혀저도 행복할거예요.

詩 모음 2024.12.11

단풍 너를 보니/법정스님

단풍 너를 보니                 ㅡ법정스님늙기가 얼마나 싫었으면가슴을 태우다 태우다이렇게도 붉게 멍이 들었는가한창 푸르를 때는늘 시퍼를 줄 알았는데가을바람 소슬하니하는 수 없이 너도옷을 갈아 입는구나붉은 옷 속 가슴에는아직 푸른마음이미련으로 머물고 있겠지나도 너처럼늘 청춘일줄 알았는데나도 몰래 나를 데려간세월이 야속하다 여겨지네세월따라 가다보니육신은 사위어 갔어도아직도 내 가슴은이팔청춘 붉은 단심인데몸과 마음이 따로노니주책이라 할지도 몰라그래도너나 나나 잘 익은 지금이제일 멋지지 아니한가이왕 울긋불긋색동 옷을 갈아 입었으니온 산을 무대삼아실컷 춤이라도 추려무나신나게 추다보면흰바위 푸른솔도손뼉 치며 끼어 들겠지기왕에 벌린 춤미련 없이 너를 불사르고온 천지를 붉게 활활불 태워라삭풍이 부는겨울이 ..

詩 모음 2024.10.28

가을

가을  기쁨을 따라갔네작은 오두막이었네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살짝 가 보았네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눈물을 줍고 있었고뒤에 있던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산이 말했네어서 가 보게, 그대의 집으로……                 -강은교(1945-) 오두막에 슬픔과 기쁨이, 이 둘이 살고 있는데 번갈아 집을 지킨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집에 오막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가을에는 찬바람이 불어 쓸쓸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니 세상의 모든 집이 오두막집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도 시월의 오두막에 살짝 가서 보았다. 조랑조랑 매달린 감이 발그스름하게 익고 감잎이 물들고, 석류도 익어 껍질이 쩍 ..

詩 모음 2024.10.14

멈추고 돌아본 날들

그때그때어쩜 그렇게많은 고민을 하고 살았을까가족에 대해친구에 대해직업에 대해꿈에 대해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지지난날의 시간을 돌아보면세상이 끝날 거 같은 절망과고민하게 만들었던 그 일들이삶의 한순간일 뿐이었다는 걸무슨 걱정이 그리 많았던가무얼 그리 힘들어했던가누구나 겪는 과정일 뿐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게 감사하다오늘 나를 있게 해준삶의 원동력이었으니까쓰러지지 않고 지탱하며 살아갈단단한 디딤돌이 되었으니까멈추고 돌아본 날들 / 조미하

詩 모음 2024.10.03

나는 배웠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나를 사랑하게만들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 뿐이다.사랑은사랑하는 사람의 선택이다.내가 아무리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그들은 때로 보답도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신뢰를 쌓는데는여러 해가 걸려도,무너지는 것은순식간이라는 것을 배웠다.인생은무엇을 손에 쥐고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믿을 만한 사람이누구인가에 달려있음을 나는 배웠다.우리의 매력이라는 것은15분을 넘지 못하고,그 다음은무엇을 알고 있느냐가 문제임도 나는 배웠다.다른 사람의 최대치에나 자신을 비교하기보다는내 자신의 최대치에나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그리고또 나는 배웠다.인생은무슨 사건이일어났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일어난 사건에어떻..

詩 모음 2024.09.27

어느 날 문득

어느 날 문득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나는 잘한다고 하는데,그는 내가 잘못한다고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나는 겸손하다고 생각하는데그는 나를 교만하다고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나는 그를 믿고 있는데그는 자기가 의심받고 있다고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나는 사랑하고 있는데그는 나의 사랑을 까마득히모를 수도 있겠구나.나는 고마워하고 있는데그는 은혜를 모른다고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는데그는 벌써 잊었다고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그는 저것이 옳다고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내 이름과 그의 이름이 다르듯,내 하루와 그의 하루가 다르듯,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채워지는 것이며 하루하루를보내는 것이 아니라내가 가진 무엇으로 채워가는 것..

詩 모음 2024.08.01

커피같은 사람이 되리라

커피 같은 사람이 되리라 처음엔 쓴 맛에 멀리해도한 번 두 번 삼키다보면깊은 맛에 빠져들어우울할 땐 설탕을 풀고눈물이 날 땐 프림을 넣어그대를 위로하며사랑으로 가슴이 벅차 오를 땐하얀 잔에 행복한 그대 모습을비춰주리라. 내 사랑하는 사람아!어쩌다 쓴 맛으로그대를 괴롭힐지라도익숙해진 그 맛에그대 나를 잊지 않을 것임을믿어 의심치 않는다.(김현수의 내 마음이 그러하므로)중

詩 모음 2024.07.20

남해 가는 길-유배시첩(流配詩帖) 1

남해 가는 길                      유배시첩(流配詩帖) 1 물살 센 노량 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선천(宣川)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윤삼월 젖은 흙길을수레로 천 리 뱃길 시오 리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땅에서 나온 모든 숨쉬는 것들 모아화전(花田)을 만들고 밤에는어머님을 위해 구운몽(九雲夢)을 엮으며꿈결에 듣던 남해 바다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고두현(1963-) 고두현 시인은 경남 남해에서 출생했다.이 시는 시인이 1993년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품인데,남해 노도(櫓島) 앞바다 앵강에서 만년에 유배를 살았..

詩 모음 2024.07.15

호수/나태주

호수네가 온다는 날마음이 편치 않다아무래도 네가 얼른와줘야겠다바람도 없는데호수가 일렁이는 건바로 그 때문이다.-나태주(1945~)짧지만 여운이 길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리움이 크고 넓기 때문일 것이다. 그이가 온다는 기별을 받은 후로 시인의 마음은 가만한 상태로 있지 못한다. 애가 탄다. 조마조마하고, 마음을 졸인다.  시간을 끌지 않고, 지체 없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시인은 이 마음의 상태를 호수에 견준다. 바람이 한 점 없는데도 호수의 수면에 잔물결이 일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은 그리움 때문이라는 것이다.나태주 시인의 시편은 우리 마음에 잠자고 있는, 사모하는 마음을 깨운다. 시인은 시 '그 집 1'에서 "그 집에는 그리움이 살고 있다그리움은 목이 긴 도라지꽃연보랏빛"이라고 썼다. 사랑의..

詩 모음 2024.07.09

청포도(靑葡萄)- 이육사

청포도(靑葡萄)             - 이육사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無情歲月若流波라 했던가요? 모든 제철 과일이 익어가는 계절이면서 특히 청포도가 익어간다는 7월, 이육사의 시 를 올리면서 함께 읽어 읊어봅니다.청포도가 익어가는 7월, 우리 어릴적 시골의 토담길 너머에서 청포도가 포동포동 알알이 익어가는 모습들이 눈에 선합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詩 모음 2024.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