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내가 40여년을 살았던 수영구 수영동에는 사적공원이 있는데 그 입구에 25의용단
이라는 제단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침략하자 수영성 수사는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갔지만, 25명의 어부들이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 공을 기리기 위해 제단을 만들어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었는데, 어쩌다 그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는 때도 있었다.
그 때는 별 생각없이 지냈는데 오히려 이곳으로 이사를 오고나서 그곳이 그립다는 생각
인지 모르겠지만 조금더 알고싶어 인터넷에 검색을 하고 공유하고자 옮겨 본다.
25의용단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과 동래읍성이 모두 함락되면서 불안감과 위기감은 극도에 달했다.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서서 적과 싸워야 하는 수영성의 경상좌수사 박홍(朴泓)은 성을
버리고 도주했다. 그리고 수영성을 쉽게 점령한 일본군은 7년 동안이나 이곳에 주둔하며
약탈과 살육을 감행했다.
이에 수영성의 수병(水兵)과 성내의 주민 25인은 성문 밖의 선서바위에 모여 일본군과
싸울 것을 피로 맹세한 후 바다와 육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했다.
25의용단은 왜란 7년 동안 유격전으로 일본군에 항전한 25인의 의용을 기리기 위해
쌓은 제단이다. 이들 25인의 사적은 1609년(광해군 1) 지역 주민들의 청원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동래부사 이안눌은 청원을 받은 후 항쟁을 했던 25인을 수소
문해 찾아내고 그들의 사적을 널리 수집하여 정방록에 실었으며, 그들의 집 문에는
‘의용(義勇)’이라는 두 글자를 새긴 편액을 걸게 했다.
그 후 순조 임금 때 동래부사 오한원은 25인 의용군의 후손들에게 역(役)의 의무를
면제시켜 주고 글을 지어 포상했다. 1853년에는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이들 25인의
사적을 기리는 비를 수영공원에 세워 ‘의용단(義勇壇)’이라 이름하고 재실 의용사
(義勇祠)를 지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 주었다.
의용단에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의 하정일(下丁日)을 택하여 향토를 수호한 25인의
넋을 기리는 제향을 드리고 있다.
1894년 군제개혁으로 좌수영이 폐지되자 수영면의 면장이 제사를 주관했으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면장이 부임한 이후에는 수영기로회(水營耆老會)에서 제향을 봉행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5의용사 건립문
이곳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7년간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의 운명이 매우 위태로울 때
우리 고장 수영을 지키기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바쳐 향토를 수호한 25의사의
충혼을 모신 곳입니다.
1853년(철종 4년) 경상좌수사 장인식에 의해 처음 이곳에 의용단비를 세운 후 해마다
봄 · 가을 2회 길일을 정해 제향을 모셔왔습니다.
1995년 수영구 개청과 더불어 수영구민들은 25의사의 행적에 비하여 의용단의 규모와
시설이 너무나 왜소한 점을 안타까이 여겨 수영 역사 찾기 일환으로 의사의 충절을 드높
이는 정화사업을 벌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새천년을 맞아 정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25의사의 위패를 새로이 제작하고 이를
모시는 사당(義勇祠-의용사)과 내삼문(永懷門-영회문), 외삼문(存誠門-존성문), 관리사
(典祠堂-전사당)를 건립하는 등 의사 사후 400여 년 만에 대대적인 정화사업을 전개하여
새롭게 단장하였습니다.
앞으로 이곳은 수영구민의 표상으로서 부산시민의 역사 도장으로서 의사들의 업적이
만대에 길이 남아 나라사랑 정신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그 후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의용사는 퇴락해져 갔다. 부산시는 1974년 12월 낡은 비석단
3개소를 정비했다. 비석단 근처에 따로 의용제인비(義勇諸人碑) 25기를 건립하고 외삼문
1동과 한식 담장을 새롭게 설치했다. 현재의 의용사는 지역 원로들이 뜻을 모아 재정비한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의용사가 지형적인 저습지로 배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수목 생육이
어렵고, 의용제인비가 노천에 설치되어 있어 제향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지역 원로들이
나서 1999년 9월 기초 사업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2000년 5월 10일 시작한 공사는 사당 1동,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1동, 담장 수리, 의용사
앞 주차장 설치 등의 공사를 마치고 2001년 3월에 준공했다.
수영사적공원 입구에 위치해 있는 25의용단은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2
호로 지정되었다.
비문
비석에 새겨진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853년 경상좌수사 장인식이 수영의 25의용단을
세우며 붙인 시이다.
향토의 수호신 25의용
의용단을 쌓아 25인의 비석을 세웠으니
장산(長山)의 남쪽이고 영해(領海)의 앞이로다.
‘충렬지’를 본받아 ‘정방록(旌傍錄)’을 지었으니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을 사모하고
오한원(吳翰源) 부사에 감사하도다.
비로소 제기를 드려 굳센 혼백이 의지할 만하니
산이 높고 바다가 깊은 만큼 영원히 없어지지 않으리로다.
의용 25인 명단(가나다 순)
김달망(金達亡), 김덕봉(金德俸), 김옥계(金玉啓), 김종수(金從守), 김진옥(金進玉), 김팽량(金彭良),
김허농(金許弄), 박림(朴林), 박응복(朴應福), 박지수(朴枝壽), 신복(辛福), 심남(沈男), 이수(李樹),
이실정(李實貞), 이은춘(李銀春), 이희복(李希福), 정수원(鄭樹元), 정인강(鄭仁疆), 주난금(朱難今),
최끝량(崔-良), 최막내(崔莫乃), 최송업(崔松嶪), 최수만(崔守萬), 최한손(崔汗孫), 최한연(崔汗連)
(인터넷 검색 배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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