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방이 되던 이듬해 가을 시골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 자란 우리집은 마당끝에는 논과 바로 붙어 있어
여름밤에는 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씨끄러운 작은강가에 있는
초가삼간이었다.
여름밤에 좁은 툇마루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면,
은빛 구슬을 쏟아 놓은 듯 별 천지가 장관을 이루고,
집옆에 있는 샛강 언덕에는 갈대가 어른들키 갑절이나 자라있고
틈부기 밤새 짝을 찾는 아름다운 시골이다.
마당에 모깃불 매캐하게 피워놓고 할매 무릅베고 누워
"옛날에~~"하시는 이야기에 무서워 할매가슴을 파고들던
어린시절이 아련히 그립다.
(어머니도 계셨지만 늘 바쁘시고 또 할매가 특히 예뻐해 주셨다.)
그땐 여름밤에 귀신불이라고 멀리 논에서 불덩어리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기도 했었다.
6.25 전쟁 직후라 시람의 뼈같은 것들이
예사로 나딩굴어 있던 시절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인(燐)이 밤에는 빛(?)을 냈던 것 같다.
그걸 어른들이 귀신불이라 아이들을 겁 주곤했었다.)
해질녘에 고래심줄(낚시줄)에 어쩌다 사오는 갈치
입에 물려있는 굵은 낚시바늘을 묶어
개구리나 미꾸라지를 미끼로 끼워
버드나무 가지에 묶어 밤에 주낙을 놓고,
새벽에 나가면 재수 좋은 날은
어린 힘으로는 들 수 없는
어른팔뚝만 한 가믈치. 메기. 뱀장어 가 걸려있다.
할매가 좋아라 고으고 지져 주시던 생각이 난다.
그뿐 아니라 매일 같이 개구리를 잡아다
돼지에게 간식을 주었으니
천지도 모르고 많은 살생을 저질렀었다.
이제라도 살생중죄를 참회드리옵니다.
용서 하소서
그뿐인가 동네어귀 커다란 버드나무 가지꺾어
버들피리 만들어 밤에도 불고 다니면 할매가 뱀 나온다고
못 불게 하시던 그런 어린 시절의 추억도 떠오른다.
또 갈대잎 배를 만들어 강에 띄워
누가 멀리 가는지 따라가며 웃고 떠들던 놀이도,
지금 아이들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놀이이지만,
60년 쯤전 그 시절에는 그런 것 밖에는 놀이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초복이 지나고는 감나무에서 혹 감이라도 떨이지면 주워다
논바닥에 묻어두고 2~3일 지나면 제법 먹을만큼 익는데
그것도 그때는 맛있는 긴식거리가 되었지.
그렇게 더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메뚜기 잡고,미꾸라지 잡고,
나락타작 마장(논바닥을 고르게 다져 만든 마당)에 내오던
중참에 우리들은 참 행복했다.
늦은 가을에는 갈대 꽃을 꺾어 씨를 털어내고 빗자루를 만들던 큰 아버지
이웃에도 나누고 친척들 오시면 선물로 나누어 주셨던 것이
지금도 갈대만 보면 생각이 난다.
(난 아버지가 어릴 때 6.25 전쟁에 전사하시고 계시지 않았다.)
겨울에는 강에서 종일 얼음위에서 쓸매 타고
젖은 옷이랑 양말 말리다 빵구내기 일쑤고
그러다 할매 한테 혼나던 일도,
어느해던가 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려
내 짧은 다리에는 허벅지까지 쌓여 길도 찾지 못하고
십리길 학교를 혼자서 갔지만 점심 시간이 다 되었고,
선생님께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길에 힘들게 출석했다고 칭찬 해 주시며,
젖은 양말을 벗겨 창가에 말려주시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그때 그 선생님은 지금도 건강하신지)
.
.
.
나이든 노인들은 추억에 젖어 산다더니
어느듯 내가 노인이 되었는가 !
내 나이 칠십이 되고보니
이 모두가 참으로 많이도 그립고 소중한 추억이다.
음악; <님의 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