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6.25韓國戰爭 71周年

highlake(孤雲) 2021. 6. 26. 18:27

6.25韓國戰爭 71周年

 

어제가 6.25 勃發 71周年이 되는 날이다.

紀念式에 혹시나 大統領이 參席하여 '6.25韓國戰爭은 김일성이 野慾으로

南侵하면서 일으킨 民族相殘의 피흘린 戰爭이라'고 말을 할까 期待를 했었지만,

亦是나 釜山에서 가진 紀念式에는 總理가 參席하고 大統領은 한마디 말이 없었다.

 

내 아버지는 그 戰爭의 소용돌이에 어느 戰線에서 피흘려 돌아가셨는지 모른다.

내 어머니는 오직 하나 남겨진 어린 子息 키우느라 自身은 全部를 犧牲하며,

모진 삶을 살다 오래전에 恨을 남긴채 世上을 떠나가셨다.

 

나는 6.25戰歿軍警 遺子女라고 學費는 免除 받고 學校를 다닌 것 같다.

시골에서 初等學校와 中學校를 다녔는데 授業料를 내지 못해 授業時間에 敎室

밖으로 쫒겨나가던 學生도 있었지만, 나는 學費를 내지 않았지만 쫒겨 나거나

授業料를 納付하라는 말을 들은적 없이 學校를 다녔으니 免除를 받았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中學校를 卒業하고 高等學校는 釜山에서 無事히(?) 卒業을 했다.

  

언제부터인지 오래전 일이라 記憶은 나지 않지만, 全國的으로 6.25戰歿軍警

遺子女會가 結成되고 各 市.區別로 支部가 생겼다. 나도 會員으로 加入하여

모임에 參席도하고  會費도 내고 했었는데 어느 해부터 모임이 흐지부지 되더니

連絡도 끊어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維持하고 있는 支部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前에는 해마다 6월이면 작은 膳物이라도 챙겨주더니 그마져도 없어졌다.

膳物이라고 해봐야 기껏 綜合膳物세트 하나이고 그것도 잘 使用하지 않는

製品이었지만, 關心을 가지고 챙겨주는구나 하는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兵務廳에서 遺傳子 檢査를 해놓으면 혹시 遺骸를 찾게 될지도 몰라

檢査를 하고 登錄을 했건만 해마다 年末에 아직 遺骸를 찾지 못했으나 政府에서는

繼續해서 發掘 作業을 하고 있다는  國防部 通報를 받았었는데,이제는 그조차도

連絡이 없다.

 

그런 通報야 없어도 괜찮고, 膳物이야 받지 못해도 섭섭하지 않지만,

그래도 軍의 統帥權者요 國民의 代表이신 大統領이 戰後世代에게  6.25의 眞像을

제대로 알리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시면 이 늙은이 恨이 다문 半이라 풀릴까.....!!

 

메스컴에 報道 되는 것을 보니 生存해 있는  6.25 參戰勇士들 禮遇를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든다.

기껏 參戰手當으로 34萬여원을 支給하는 것 같은데 報勳病院이 없는 시골에서는

그 돈은 藥값으로 다 들어가고 生活費가 없어 어렵다고 하니 나라를 위해 自身을

犧牲하신 報恩이 이러니, 앞으로 나라가 危機에 處하게 되면 누가 自己를 犧牲하여

求하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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