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흘러간 시간은 우리의 간절함에도 되돌아오지
않는 무심한 것이다.
원효스님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경책(警策)하고 계신다.
"오늘도 공부가 끝나지 않았는데 악(惡)을 짓는 일은
날로 많아지고, 금년에도 다하지 못했는데 번뇌는 끝이
없고, 내년에도 다할 가능성이 없다면 깨달음으로 나아
갈 수가 없구나.
시간은 옮기고 옮겨 어느새 하루가 지나고,
하루하루가 옮겨 어느새 한 달이 지나며,한 달 한 달이
옮겨 어느새 연말에 이르렀고, 한 해 한 해가 옮겨 잠깐
사이에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나니."
그에게 시간은 악을 그치게 하는 것이었고,번뇌를 지우는
것이었고,공부였고, 깨달음이었다.시간이 간다는 것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사라져간다는 의미였다.
원효는 일생이 아니라 시간 시간을 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루가 노을과 함께 저무는 시간이면 탄식
했다고 한다. "오늘도 저물었구나.아침부터 왜 서두르지
못했던가." 노을 앞에 선 원효의 탄식을 들어보라.
그것은 가장 절실하게 인생을 산 사람이 부르는 시간의
절창(絶唱)이다.
시간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인생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인디언의 12월은 '침묵하는 달' '무소유의 달'이다.
그들은 자연의 변화나 영혼의 움직임을 주제로 매달
명칭을 만들었다고 한다.
달력을 넘기며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던
그들은 말이 다툼의 근원이고 소유는 탐욕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침묵과 무소유로 다툼과 탐욕의 한 해를 성찰하고
비우고자 했다. 그리고 의미로 충만한 새 날들을 기다렸다.
탐욕의 존재인 우리는 얼마나 쉽게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가.
당대(唐代)의 선승(禪僧) 운문(雲門)이 대중에게 물었다.
"15일 이전 일에 대해서는 그대들에게 묻지 않겠다.
15일 이후에 대해서 한마디 해보아라"
아무도 대답이 없자 스스로 말했다.
"날마다 좋은 날이지."
과거를 묻는 것은 부질없다.시간은 양적인 길이이지만,
의미의 깊이이기도 하다.
시간이 의미가 될 때 시간은 언제나 현재가 되고 영원이 된다.
시간을 끊임없이 의미로 창조해 나가는 사람에게 시간은
자신이 지닌 소중한 가치를 내어준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행복한 사람의 매일은 날마다 좋은 날일 수 밖에 없다.
<옮겨 온 글>
글/惺全스님 (남해 염불암 주지) - 조선일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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