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모음 511

눈풀꽃

1993년 퓰리처상, 2014년 전미 도서상을 받은 시인에게 무명(無名)이라는 무례라니.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77). 과문한 탓이겠지만, 발표 전에는 시인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 번역된 시집 한 권이 없다. 류시화 시인 등이 엮은 시선집에 한두 편씩이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만 무명이었을까? 미국에서도 글릭은 주류가 아니었다고 한다. 중요한 상을 받은 시인임에는 분명하지만, 문학 전공 교수나 학생에게도 ’노벨문학상 글릭‘은 예상 밖이었다는 것. 글릭의 시를 번역·소개한 외국어대 정은귀 영미문학· 문화학과 교수는 “지난해에 세상을 떠난 메리 올리버처럼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지도 못했고, 평자들도 주목하지 않아서 학교에서도 많이 가르치지 않..

詩 모음 2020.10.30

가을 바람/이해인

하늘은 높아가고 마음은 갚어가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 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여 오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싶고 죄없어 눈이 맑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 친구여 너와 나의 사이에도 말보다는 소리없이 강이 흐르게 이제 더욱 고독해져야겠구나 남은 시간 아껴스며 언젠가 떠날 채비를 서서히 해야겠구나. 잎이 질 때마다 한웅큼의 시(詩)들을 쏟아 내는 나무여 바람이여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어느새 감기 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 하늘은 높아가고 기도는 깊어가네 - 내 나이 늦가을 쯤 되었으리라. -

詩 모음 2020.10.06

10월의 시 / 이재호

​ 10월의 시 / 이재호 왜 그런지 모르지만 외로움을 느낀다. 가을비는 싫다. 새파랗게 달빛이라도 쏟아지면 나는 쓸쓸한 느낌인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낙엽이 떨어진다. 무언가 잃어버린 것도 없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또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잃어버린 것도 없이 허전하기만 한 것은 군밤이나 은행을 굽는 냄새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얼마나 가난한가. 나는 왜 살부빔이 그리운가. 사랑이란 말은 왜 나에게 따뜻하지 않은가. 바람이 분다. 춥다. 옷깃을 여민다. 내 등뒤에는 등을 돌리고 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울음처럼 들린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

詩 모음 2020.10.03

10월의 기도 / 이해인

10월의 기도 / 이해인 언제나 향기로운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좋은 말과 행동으로 본보기가 되는 사람냄새가 나는 향기를 지니게 하소서 타인에게 마음의 짐이 되는 말로 상처를 주지 않게​ 하소서 상처를 받았다기보다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늘 변함없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살아가며 고통이 따르지만 변함없는 마음으로 한결같은 사람으로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게 하시고 마음에 욕심을 품으며 살게 하지 마시고 비워두는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시고 남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게 하소서 무슨일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아픔이 따르는 삶이라도 그안에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시고 건강 주시어 나보다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10월에는 많은 사람..

詩 모음 2020.10.03

바람에게 / 이해인

10월의 시 바람에게 / 이해인 몸이 아프고 마음이 우울한 날도 너는 나의 어여쁜 위안이다, 바람이여 창문을 열면 언제라도 들어와 무더기로 쏟아 내는 네 초록빛 웃음에 취해 나도 한점 바람이 될까 근심 속에 저무는 무거운 하루 일지라도 자꾸 갈아 앉지 않도록 나를 일으켜 다오 나무들이 많이 사는 숲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 다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겠다 삶의 절반은 뉘우침 뿐이라고 눈물 흘리는 나의 등을 토닥이며 묵묵히 하늘을 보여 준 그 한사람을 꼭 만나야겠다

詩 모음 202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