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6월所懷(소회)

highlake(孤雲) 2020. 6. 30. 12:44

6월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나는 6월이면 여러가지 想念(상념)이 떠 오른다.

6일 顯忠日(현충일)에는 예전에 내가 健康(건강)할 때는 顯忠日行事(현충일행사)에

參席(참석)하고 忠魂塔(충혼탑) 壁(벽) 돌에 새겨진  내 아버지 이름석자를 찾아  默念

(묵념)을 드리곤 했었는데, 지금은 내몸에 障碍(장애)를 입어 擧動(거동)이 不便(불편)

하여 參席(참석)은 못하고 政府(정부)에서 하는 顯忠日行事(현충일행사)를 TV로 보면서

1분간 默念(묵념)하는  것으로 代身(대신)할 수 밖에 없다.

 

25일 6.25韓國戰爭紀念日(한국전쟁기념일)에는 지금까지는 別途(별도)로 하는 行事

(행사)도 없이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다.

같은 同族(동족)을 殺傷(살상)해야하는 悽慘(처참)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내 아버지는 어느 戰場(전장)에서 쓰러지셨는지도 모르게 사라져 가셨다.

戰爭(전쟁)이 休戰(휴전)으로 끝나고 한참 후에 戰死通知書(전사통지서) 한 장과 勳狀

(훈장) 한개 달랑 郵便(우편)으로 집에 보내온게 全部(전부)였다.

 

내 靑少年期(청소년기)는 戰爭(전쟁),가난,靑孀(청상),孤獨(고독),周邊蔑視(주변멸시),

부끄러움,서러움...온통 그런 것 뿐이었다.

國民(국민)(지금은 초등)學校(학교)는 그냥 다녔고,中學校(중학교) 부터는 援護廳(원호청)

(지금의 보훈청)으로부터 學費補助(학비보조)를 받았다.

시골에서 밥술은 먹을 만 한 집안에 태어났건만 戰爭(전쟁)을 겪으며 아버지가 안 계시는

집안 形勢(형세)는 날로 기울어서 어린 나이에 집안 일을 도우면서 學校(학교)를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집에서는 공부할 시간이 없었고 밤에는 전깃불도 없이 호롱불을

켜고 지내야 했으며, 別途(별도)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初等學校(초등학교)와 中學校

(중학교)에서는 上位圈(상위권)에 들었었다.

그러다 高等學校(고등학교)를 釜山(부산) 名門(명문)이라는 工業高等學校(공업고등학교)

에 入學(입학)을 하였으나 시골에서 별 공부를 하지 않았던 그 習慣(습관)이 몸에 베어

高等學校(고등학교) 다닐 떼에도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고, 中學校(중학교) 科程(과정)부터

基礎(기초)가 不足(부족)하여 學業(학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집안 形便(형편)이 어려우니 學院(학원)에  갈 與件(여건)도 안 되고 어머니는 일이 바쁘시기도

하고, 다잡아 공부를 督勵(독려)해 주시지도 않았고, 별도로 누구하나 學業指導(학업지도)를

해 줄 사람도 없었다,

學校 敎科目(학교교과목)에 專門 用語(전문용어)가 많아 어렵기도하고 공부에 재미를 잃어

거의 꼴지를 해메다  卒業(졸업)을 하고, 産業現場(산업현장)에서 晝(주).夜(야)로 休日(휴일)도

없이 열심히 일하며 家庭(가정)을 이루어 살았고,  나이 들어서는 작은 零細企業(영세기업)

이지만 直接(직접) 經營(경영)도 하면서 나름대로 國家 經濟 發展(국가 경제 발전)에 寄與

(기여)하며 살아 왔다고 지금도 自負(자부)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부 못 한 過去(과거)를 쓰고 보니 부끄럽기도 하다. 

 

이번 6.25 韓國戰爭(한국전쟁) 70周年(주년) 紀念式(기념식)에는 大統領(대통령)께서도

參席(참석)하는 特別(특별)한 行事(행사)로 北韓地域(북한지역)에서 戰死(전사)한 國軍

(국군) 147柩(구)의 遺骸(유해)가 70년만에 奉還(봉환)되는 場面(장면)을 TV로 지켜 보면서

비록 내 아버지의 遺骸(유해)는 아직 찾지 못고 있지만 身元(신원)이 確認(확인) 되어 遺族

(유족)에게 引繼(인계)되는 걸 보며 부러운 마음과 혹시 저 147柩(구)중에 내 아버지 遺骸

(유해)가 包含(포함)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漠然(막연)한 期待(기대)와 함께 가슴

벅찬 感動(감동)을 느끼며 지켜보았는데, 오늘 新聞(신문)에 그 모든것이 事前(사전)에

짜여진 脚本에 따른 보여주기식 퍼포먼스였으며, 美國(미국)을 通(통)해 어렵게 모셔온

遺骸(유해)를 하나의 이벤트에 利用(이용)한 小品(소품) 取扱(취급)하다시피 했다는 글을

보니 너무나 失望(실망)스럽다.

 

또 愛國歌(애국가) 齊唱(제창)에서 前奏曲(전주곡)을 왜 偏曲(편곡)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처음 들었을 때, 늘 듣던  그 익숙한 愛國歌 前奏曲(애국가전주곡)이 아니라서 이상하게 생각

했었는데, 오늘 放送(방송)과 新聞(신문)에서 北韓(북한)의 愛國歌 前奏曲(애국가전주곡)과

區別(구별)이 잘 안 될 程度(정도)로 類似(유사)하게 偏曲(편곡)하여 演奏(연주)했다고 한다.

이제는 愛國歌(애국가)까지 歪曲(왜곡)하려는가 하는 生覺(생각)을 하니 정말 기가 막힌다.

當局은 意圖(의도)치 않은 部分(부분)이고 미쳐 確認(확인)을 못 해 그런일이라 解明(해명)을

하지만 이를 믿을 國民(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어떻게 이번 政府(정부)는 모든것을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로 一貫하려는지 참으로 理解

(이해)할 수가 없다.

  

來年(내년)을 또 期約(기약)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데   6월은 또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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