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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

highlake(孤雲) 2020. 5. 3. 11:33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이 있어요
이는 '가득참을 경계하는 잔' 이라는 뜻으로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술이 일정 이상

차오르면 술이 모두 새어 나가도록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하지요


이 잔에는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지나침을 경계하는 선조들의

교훈이 담겨 있는 잔이지요

고대 중국의 춘추시대의 춘추오패(春秋五覇)중 하나인 제환공(齊桓公)이 군주의 올바른

처신을 위해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계하며 늘 곁에 놓아 마음을 가지런이 했던 그릇

(欹器)이라 하여 유좌지기(宥坐之器)라 불리었지요

순자(荀子)에서 이르기를 후에 공자(孔子)가 제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그릇에 구멍이 뚫려 있음에도 술이 새지 않다가 어느 정도 채웠을때 술이 새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음을 지키고 천하에 공을 세우고도 겸양해야 하며
용맹을 떨치고도 검약해야 하고 부유하면서도 겸손함을 지켜야한다"며

이 그릇의 의미를 가르쳤다 하네요

중국에서는 이 그릇이 19세기 청(淸)의 광서제(光緖帝)때 만든것이 전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과학자인 하백원(河百源, 1781~1845)이 술을

가득채우면 새어나가는 잔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지요

지금은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강원도 홍천 지방의 전설로 내려오고있는데
우명옥은 당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은 인물로 후에 자신의 방탕한 삶을

뉘우치면서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하며 이 잔은 후에 조선후기의 거상 임상옥(林尙沃,

1779~1855)에게 전해지며 그는 이 잔을 늘 곁에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고 하지요

1700년대 강원도 두메 산골에 우삼돌이란 도공이 있었어요
질그릇을 구워 파는 삼돌은 도자기로 유명한 분원에서 일하는 것이 소원이었지요
마침내 그는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 국가에서 운영하는 분원으로 가서 어렵사리 지외장의

제자가 되었어요 주야장천 피땀어린 노력 끝에 그의 도예기술이 뛰어난 경지에 도달하였지요

그가 만든 백자 반상기는 왕실에 진상이 되었고 왕은 상금을 내리고 치하를 아끼지 않았어요
스승은 기쁨을 감추지 못해 촌스런 삼돌이라는 이름 대신 명옥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우명옥은 뛰어난 도공으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하였고 돈도 엄청나게 벌게 되었지요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할까요?
이를 시기한 동료들이 어느 날 뱃놀이를 하자고 유혹했어요
그들은 아름다운 기녀 한 명에게 명옥의 마음을 사로잡도록 단단히 부탁 하였지요

술과 여자를 모르고 일만하며 살아 온 명옥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어여쁜 여자와의

향락에 빠져 해가 지고 날이 가는줄 몰랐지요
다음날 명옥은 날이 밝기가 무섭게 돈주머니를 차고 기녀 집으로 달려가 술을 마셨어요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허구헌날 그는 술과 여자에 취해 버렸지요
동료들은 자신들의 계략이 들어맞았다고 기뻐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놀이를 나갔던 배가 폭풍우를 만나 뒤집혀 동료들은 모두 빠져 죽고
명옥만 혼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어요



그 일을 겪은 후 명옥은 지난 날의 교만과 방탕함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다음날부터 새벽 일찍

일어나 백일기도를 드린 뒤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었지요
그런지 얼마 후에 명옥은 조그마한 술잔 하나를 스승인 지외장에게 바쳤어요

지외장 : 이게 무슨 잔인가?
우명옥 :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입니다.
지외장 : 그게 무슨 뜻인가?
우명옥 : '지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입니다.
지외장 : 다른 술잔하고 어떻게 다른가?
우명옥 : 잔의 7부만 술을 따르면 마실수가 있는데 
             7부가 넘치게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사라지고 맙니다.
지외장 : 호오, 그런 신기한 잔을 만들다니....
우명옥 : 옛부터 문헌에만 전해 오던 술잔을 제가 만들어 봤습니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리는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하늘에 정성을 드리는 제천의식때 사용하던 비전의 술잔이었습니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과욕을 경계했다는 신비한 술잔을 본 뒤
이를 본받아 늘 곁에 두고 과욕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하백원(1781∼1844)은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나 평생 동안 실학 연구에 몸을 바친

과학자이며 실학자이지요.

그는 계영배를 비롯하여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차, 펌프같이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 자명종 등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가 만든 계영배는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다만 하백원과 우명옥이 동시대인지라 제작 과정에서 서로 인연을 맺지 않았나 추측해

볼수 있지요 그 후 우명옥이 만든 계영배를 당대 최고의 거상인 임상옥(林尙沃: 1779∼

1855)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최인호가 쓴 <상도(商道)>라는 소설에 이와 관련된 장면이

여러번 나오고 있지요 임상옥은 술병을 들어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미 이 잔의 신통력을 알고 있는 임상옥이었기에 그는 술잔의 70퍼센트 정도만 술을 채웠다.

임상옥이 가득 채우지 않자 이를 지켜보던 조상영이 입을 열어 말했다.

"어찌하여 술잔을 가득 채우지 않는가?"

"나리." 임상옥이 대답했다. "나리께서 직접 보시지 않으셨습니가. 술잔을 가득 채우면

술이 없어지는 것을" 조상영이 다시 물었다. "이 정도만 채우면 술이 없어지지 않는 것인가."

"그러할 것이옵니다."

"좋소. 한번 지켜볼수 밖에."

조상영은 7부 정도만 채운 잔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는 조상영뿐만 아니었다.

연회에 참석했던 모든 악사와 모든 기생들도 감히 이 잔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2002년에 MBC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는데 드라마가 방영된 뒤부터 계영배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소주나 폭탄주를 7부 정도만 따라 마시는

술자리도 많아졌다 하네요 불경<42장경>에 이런 말이 나오지요.

"깨달음을 얻으려는 사람은 욕심의 불길을 몰아내지 않으면 안된다 마른 풀을 등에 진 사람이

들불을 보고 도망치듯이 깨달음의 길을 찾는 사람은 반드시 이 욕심의 불에서 멀리 달아나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이 가득 들어찬 자기 자신의 마음을 믿어서는

아니되며 자신의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대로 방치해 두어서도 아니된다.

마음을 억눌러서 욕심이 시키는대로 내닫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이렇듯 불경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각자의 마음속에 계영배를 간직하고 산다면

이 세상은 좀 더 행복해 지지 않을까요?


말하고 싶은 것의 7부만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것의 7부만 행동하고 갖고 싶은 것의 7부만

갖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싸움도 분노도 대립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거라 믿어요.

욕심과 자만심의 독이 점점 퍼져가고 있는 요즘 '절제와 겸손을 가르치는 신비의 술잔

계영배'의 의미를 되새기며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상도(商道)에서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는 계영배에 새겨진 문구이지요.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속뜻이 있는

계영배는 과욕을 하지 말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