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방앗간의 추억

highlake(孤雲) 2019. 1. 16. 16:41


옛날 방앗간(정미소)


                                       기억속의 옛날 방앗간의 모습이 이랬던 것 같다 (그림 模作)  


옛날에는 精米所(정미소)를 방앗간이라고 했다.

아마 지금은 사라지고 痕迹(흔적)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옛날 방앗간,그곳에는

人情(인정)있었고 이야기도 있었다.


發動機(발동기)를 통통 돌려서 풀리(Pulley)가 돌아가고 보기에도 아찔하게 벨트

(Belt)를 걸어주면 全體(전체) 機械(기계)를 作動(작동)시키는 방아機械(기계).


혹 失手(실수)라도 하여 벨트에 장갑이나 옷이 걸려 큰 事故(사고)를 당할 있어

危險(위험)機械(기계)이기 때문에 가끔 다치는 경우가 있었다고 어른들에게

들었다.

四角桶(사각통)에 나락(벼)이나 보리를 담아주면 垂直(수직)의 버킷 컨베이어

(Bucket Conveyor)를 通(통)해 위에 있는 원뿔형 (통)에 들어간 나락이나

보리가 스크류(Screw)가 回轉(회전)하면서 껍질을 벗겨내고 몇번을 反復(반복)

하면 搗精(도정)이 되어 하얀 쌀이나 보리가 쏟아지는 방아機械(기계)가 하도

神奇(신기)해서 등겨먼지를 뒤짚어 쓰면서 지켜 보고 있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搗精(도정)한 쌀을 자루에 담아주면 지게에 지고 집으로 가지고 왔었다.
나는 어려서(초등학생) 작은 자루에 半(반)程度(정도)만 담아 질 수 밖에 없었는데

中學校(중학교) 卒業(졸업) 무렵에는 제법 힘이 불어 한자루를 담아도 질 수 있었다.

그 방앗간에는 쌀만 搗精(도정)을 하는것이 아니라 밀을 갈아서 가루로 만드는 機械

(기계)있었다.
그때는 껍질까지 갈아서 밀가루가 지금처럼 하얗지 않고 누런색이었고 그 밀가루로
십리나 떨어진 邑內(읍내)에 가서 국수를 뽑아 여름철에는 국수나 수제비를 주로 해

먹었는데 거칠고 맛은 좀 못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몸에는 좋았을것이고 지금처럼 冷藏(냉장)이나

冷凍(냉동)保管(보관)할 수 없었기에 여름철에는 벌례집이 뭉쳐있기도 했었는데,

요즘처럼 밀가루에 防腐劑(방부제)나 美白(미백) 處理(처리) 등을 하지 않은 살아있는

所謂(소위) 말하는 有機農 (유기농)食料品(식료품) 그 自體(자체)것이다.

지금은 농촌에서 搗精機械(도정기계)를 각 家庭(가정)집에 設置(설치)를 해서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搗精(도정)을 해서 먹기 때문에 옛날처럼 精米所(정미소)에 가지 않고

점차 精米所(정미소)가 없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우연히 이 그림을 그리다가 그 옛날 방앗간이 생각이 나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고,

아마도 지금은 다 없어졌을 테고 오직 내 記憶(기억)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참고 : 본인이 기계를 전공했기에 (이해를 돕고자) 일부 전문용어를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