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어루만져 준다/안은영 내가 나를 어루만져 준다 / 안은영 이 키로 이 얼굴로 이 뇌 용량으로 이 성질머리로 이 나이 될 때까지 용케 버티고 있구나. 그래, 무명인으로 제 역할 하느라 이렇게 애를 쓰는구나. 냉철한 이성으로 스스로 채찍질해야 함도 맞지만 가끔은 내가 나를 어루만져 준다. - 출처 / 《참 쉬운 .. 詩 모음 2018.04.29
낙화/조지훈 낙화 / 조지훈(1920~1968)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 詩 모음 2018.04.23
아내의 봄비/김해화 아내의 봄비 / 김해화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 원 조갯살 오천 원 도사리 배추 천 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 詩 모음 2018.04.18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이기철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아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그러면 늘 .. 詩 모음 2018.04.09
치마/문정희 멋진 시 "치마" 이런 시를 읽은적이 있는가? 치마 /문정희 (1947년생 보성출신 여류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는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드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무언가 확실히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 詩 모음 2018.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