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털린의 역설이란 말이 있다.
연봉이 늘어도 더 이상 행복감이 늘지 않는 현상으로 기준은 7만5000달러다.
그런데 최근 "행복의 한계 효용은 없고, 벌수록 행복하다"는 블룸버그 사설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일까.
갓 구운 케이크라도 첫입 이후 만족은 줄기 마련 아닌가. 집이나 연봉 등
익숙해지면 상한의 기준이 느는 게 사람 마음 아닌가.
그런 이유로 심리학자들은 쾌락 적응을 인간 행복의 장애물로 규정했다.
자료들을 읽다가 이스털린이 주목한 게 7만5000달러라는 절대적 소득이 아니라
상대적 가치라는 걸 깨달았다.
연봉 20만달러를 받아도 주위 모든 사람이 같은 돈을 벌면 행복감이 더 올라가진
않는단 뜻이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버는 게 행복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우리는 과거와 달리 학교 친구뿐 아니라 유명인이나 부자가 뭘 먹고,
입고, 타는지 알 수 있다. 경탄이 곧 상실로 이어지는 24시간 비교지옥에 갇힌
셈이다. 특히 한국처럼 유독 '포모(Fear Of Missing Out·고립공포증)'가 심한
곳에선 더 그렇다. 그래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덕목이 많지도 부족하지도 않음을
뜻하는 '적당과 적정'이다.
주식 투자자들의 시장 심리를 측정하는 '공포와 탐욕지수'라는 말이 있다.
꾸준히 수익률이 좋은 한 지인은 폭락장에도 꽤 초연하다.
떨어지는 공포와 올라가는 탐욕 모두를 견디는 힘은 공부로 채워진 중용과
자신만의 투자 철학이다.
예측 불가능한 주식 시장에서 최고의 매매법은 바닥에 사서 꼭지에 파는 게 아니다.
고수는 적정한 가격에 들어가 적당한 이익을 내고 나온다.
삶도 그렇다. 포만과 과식의 기준이 모두 다르듯 적당함은 오직 나만 알 수 있다.
혼자만의 자기 성찰이 중요한 이유다. 연결이 디폴트가 되면 단절이 더 중요해진다.
타인과의 비교가 바람 불 듯 일상인 세계에서 우리는 계속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나만의 적당과 적정을 익히면 휠지언정 꺾이진 않을 것이다.
비바람 속 갈대의 적정함이 중용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은 매번 흔들리면서도 나만의 중심을 찾는 과정이다.
<조선일보 오피니언(백영옥 밀과 글)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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