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할수록 돌아가라’는 한국 전래의 속담으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일본에서 전해진 수입 속담이다.
일본어로는 ‘이소가바 마와레(急がば回れ)’라고 한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천천히 가라’도 아니고 왜 하필
‘돌아가라’고 했는지 어구만으로는 그 의미가 아리송하다.
의문에 대한 답은 본래 일본 속담의 유래에서 찾을 수 있다.
‘이소가바 마와레’는 15세기 무로마치(室町) 시대에 종장(宗長)이라는 시인이 지은
연가(連歌)의 한 구절이다.
노래 배경은 이렇다. 일본의 동서를 연결하는 간선도로인 도카이도(東海道)에는
구사쓰(草津)와 오쓰(大津)라는 교통 요지가 있다.
두 곳 사이에는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인 비와코(琵琶湖)가 있어서 두 곳을
오가려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거나, 조금 떨어진 곳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두 노선의 거리는 호수 횡단 뱃길이 7km,
다리를 이용하는 우회로가 13km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있다.
당연히 뱃길이 빠른 길이다.
다만 이 길은 인근 히에이(比叡)산에서 시시때때로 불어오는 돌풍에 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 하는 기로에서 먼 거리를 돌더라도 안전하게 다리를 이용하는
편이 결국은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는 지혜라는 것이 이 구절의 의미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은 단순히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시간이나 비용이 더 들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확실하고 검증된
방식을 택하라는 것이 본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신속한 결단과 리스크 테이킹이 생존과 직결되는 현대사회에서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큰 성공을 이루는 법보다 실패를 줄이는 법을 먼저 익히는 것이 성공에 이르는
지름길일 수도 있는 것이 인간사의 이치가 아닐까 한다
<조선일보 오피니언(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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