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버지 사랑

highlake(孤雲) 2019. 2. 6. 16:59


가 태어나기 약 일년 전인 1945년 8월15일 우리나라가 日帝强占期로부터

解放은 되었지만 政治는 安定이 되지 않았고 社會는 極度의 混亂속에 理念은

左.右로 나누어져 極甚한 對立을 하고 있을 때, 나의 아버지는 좌.우익 迎入의

誘惑을 뿌리치고 國防警備隊(國軍의 前身)에 自願入隊 하여 軍人일 때, 내가

태어났다.



내가 5살이던 1950년 6월25일 김일성의 기습 南侵으로 韓國戰爭이 일어나고

軍人이던 나의 아버지는 어느 戰線인지 알 수 없는 이름모를 戰場에서 이슬로

사라지셨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戰爭으로 廢墟가 되다시피한 農村에서 가난하게 홀

어머니 손에 자라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없어 特別히 不滿스러운 것도 몰랐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 줄 알고 그렇게 살았다.

또 어린 時節에 나의 進路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助言을 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무슨 일을 하겠다는 目標나 꿈도 없이

그저 因緣대로 살았을 뿐이다.


내가  高等學校를 다닐 즈음에  어렴풋이 나도 아버지가 계신다면 하는 漠然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계시는 親舊가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다가 結婚을 하게 되고,

내가 아버지가 되었을 때 내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구실을 다하지 못한 것 같아

後悔스런 마음이 남아았다. 


핑계이겠지만, 내가 아버지의 가르침이나 사랑을 받아 보질 못했기에 내 아이

들에게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서 아버지의 사랑을 주지 못하고 그저 嚴

하게만 했었던 것 같고, 또 아이들 敎育도 아내에게만 맡기고 많은 部分에서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어쩌면 그렇게도 바보 같은 삶을 살아 왔던가 하는

悔恨이 남아있지만, 多幸이도 아이들은 바르게 자라 지금은 다 獨立하여 지들

家庭을 꾸리남들처럼은 살고 있으니, 이 또한 아내의 得分이라 생각하고 

그저 感謝할 따름이다.



 Song For My Father / Pat Clem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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