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70줄에 접어 든 지금도 어쩌다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목이 메어진다.
언제나 엄마 하고 부를 수 있었고 또 볼 수 있었던 내 어머니
이제는 내 곁에 계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다시는
볼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게 된 세월이 벌써 25년도 더 지나
영혼인들 남았을까?
그 땐 어찌 그리도 소견이 좁고 생각이 짧았던지....
어머니 그 몸에 병이 들어 당신 스스로 운신조차 힘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 어머니를 살갑게 모시지 못했고
큰 병원에서 진료 한번 받아보게 하지 못하고 그렇게 지내시다
짚불 사라지듯 보내고 만 불효한 자식이 또 있을까?
내아버지는 6.25 동란에 젊은 나이에 군인으로 전사하시고
내 어머니는
청상 과부의 몸으로 혼자 어린 나를 키우시느라 농사도 지어야 했고,
틈틈이 삯 바느질도 하셨다.
지금처럼 이렇게 설을 앞둔 그믐께에는 내 어머니는 밤늦도록
재봉틀과 씨름을 하셔야 했다.
설빔으로 맡겨준 한복 짓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내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도 내가 살던 곳에는 시골이라 전기가 없어
밤에는 호롱불을 켜고 지내야 했기에 어머니는 밝지도 못한 어두운
방에서 바느질을 하셨고, 나역시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어야 했었다.
그렇게 남의 일로 밤을 새우다시피 일을 하시고 정작 우리집 설 준비는
항상 뒤로 미루다 섣달 그믐날 밤이 되어서야 허둥지둥 하시는 걸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살다가신 내 어머니
어느새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고,또 몸에 장애를 갖게되어,
어머니 내게 주신 몸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채 어머니 찾아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에야 생전에 잘 하지 못한 불효가
가슴을 이리도 아프게 한다.
살아 생전에 어머니와 여행이라도 한번 갔더라면,
외식 한번이라도 같이 했더라면,그땐 사는게 힘들기도 했지만,
내 좁은 소견이 다음에 하지 미루고, 설마 가시기야 하다가
어느날 짚불 사그라지듯 그 어머니 가신지 수십년이 지나.....
내 몸에 몹쓸 장애가 와 그 어머니 누워계신 그 곳 찾아 갈 수도
없고, 술 한잔 올리고 절 한번 할 수 없는 이몸이 너무나 원망스럽고
생각만 하면 서러워 눈물이 납니다.
그 어머니가 사모치게 그립고,생전에 못해드린 것들이 悔恨으로
남아 마음이 너무나 아파
오늘
"이 불효한 자식 엎드려 울며 용서빕니다."
"어머니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 甲午年 그믐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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