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맵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해외여행이 풍성해졌다.
이전 같으면 길이 복잡해 포기할 만한 곳도 곧잘 찾아가곤 한다.
구글맵이 있어도 갈피를 못 잡을 때가 있다.
대도시의 기차나 지하철역에 도착했을 때다. 예전의 나는 역 안의 지도나
안내도를 보면서 정확한 길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이젠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 밖으로 나간다.
밖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 봐야 정확한 길을 찾기 힘들고,
밖으로 나와 움직여봐야 비로소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잘못된 길이라도 가봐야 목적지에서 멀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가이다.
작가 초기 나는 완벽한 플롯, 나를 목적지까지 안내해 줄 지도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많은 실패를 통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후,
대략적인 아이디어가 정리되면 일단 쓰기 시작한다.
시작이 돼야 비로소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것이 옳은 방향이면 계속 나아가고,
잘못된 방향이면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른 방향으로 가보길 반복한다.
뛰어난 재능에도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실패가 두려워 애초에 시작도 못 하거나, 완벽하지 않으면 안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완벽해서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하면서 완벽해지는 것이다.
살면서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지를 묻게 될 때는 대개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돼 길을 잃었을 때다.
하지만 잘못 들어선 길이 종종 더 좋은 지도를 만든다.
성공에는 기쁨이 있지만 실패에는 배움이 있다.
인생은 편도이고 내일이라는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초행길이다.
완벽한 지도는 없고 지도가 우리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과거에 비해 변화가 빠른 지금 필요한 건 가능성에 한계를 짓는 ‘지도’가 아니라
안개를 헤쳐 나갈 때 쓰는 ‘나침반’일지 모른다.
결국 끝까지 굳게 믿어야 할 건 하나. 튼튼한 우리의 두 발뿐이다.
<조선일보 오피니언(백영옥의 말과 글)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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