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은 마음이다. 말 이전에 마음끼리 통하는 거다.
경허스님(1849~1912)이 어느 날 포행을 나가니 대중이 따라 갔는데, .
경허스님이 닭을 보고 손으로 한번 가리키고 지나갔다.
저녁에 경허스님 방을 누가 노크를 해서 들어오라 하니,
제산스님(1862~1930)이 닭을 잡아서 백숙을 해서 막걸리까지 가지고 들어왔다.
"과연 나의 의지를 너 밖에 모르는구나!"
경허스님이 닭을 먹고 싶다는 뜻을 다른 사람은 몰랐다.
"내가 여기 있을 필요 없네. 조실은 자네가 하게"
하고 제산스님에게 해인사 조실을 물려주고 떠났다.
만공스님(1871~1946)이 수박이 먹고 싶어서 대중을 모아놓고.
“오늘 내가 묻는 걸 대답하면 내가 수박을 사겠다. 매미 우는 소리를 잡아오너라.
그러면 수박을 사겠다."
어떤 스님은 "맴맴맴“하고, 누구는 할을 하고, 바닥을 탁 치는 사람, 절하는 사람,
빙빙 돌다 절하고 “이겁니다!” 하는 사람도 있고, 별 소리를 다 하는 거였다.
어느 스님이 "상중무불 불중무상(相中無佛 佛中無相)!“ 하니,
만공스님이 "말은 좋다“ 하였다.
늦게 보월스님(1884~1924)이 들어오자 만공스님이 묻길,
“이런 일이 있었는데 자네 같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보월스님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드리며,
"수박을 사 잡수십시오."
"과연 보월이로다. 그대가 나의 의지를 알았네."
6조 혜능스님(638~713)이 방아를 찧는데, 5조 홍인스님이 와서
방아를 세 번치고 뒷짐지고 돌아갔다.
혜능스님은 '삼경에 뒷문으로 들어오라'는 뜻임을 알아차리고
그대로 행동에 옮긴 것이다.
요즘 공부하는 사람이 그걸 본다면, 방아를 친 거는 쌍차(雙遮)고,
뒷짐지고 돌아간 거는 쌍조(雙照)다 이럴거다.
내가 이 절집안의 살림살이를 너무 잘 아는데 전부 그러고 있다.
기가 차는 것 아닌가? 보통 일이 아니다.
향곡스님(1912~1979)이 성철스님(1912~1993)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데,
성철스님이 배웅하며 같이 내려왔다.
"향곡!"
"왜?"
"배 좀 한번 보여다오."
향곡스님이 배를 보여주니 성철스님이 손으로 배를 쿡 찔렀다.
"성철이 너도 한번 보여다오."
성철스님도 배를 보여주니 향곡스님이 배를 쿡 찔렀다.
왜 그렇게 서로 배를 찔렀을까?
이건 말 이전 소식이다. 서로 배웅을 한 것이다.
인사를 말로 안하고 행동으로 한 거다.
이렇게 서로 통하는 거다.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그런걸 보고 쌍차쌍조니, 최초구니,
말후구니, 하고 별 소리를 다 한다.
그런데 배를 찔러서 '잘 가라.', '잘 있어라.'하는 의지를 통했지만,
실지로 거기에는 쌍차쌍조도 최초구도 말후구도 다 있다는 거다.
(학산 대원 스님)
※ 이렇게 상대방의 의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모르는 상태로 '그냥 볼 뿐'인것을 가지고
'알아차림'이니, 심지어 '견성(見性)' 운운 하는
잘못된 가르침에 주의해야겠습니다.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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