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스크랩

어머니와 딸의 마지막 전화통화

highlake(孤雲) 2023. 3. 2. 12:40

코로나로 임종 앞둔 할머니의 딸
“엄마와 통화하고 싶어요. 부탁해요”
환자 귀에 수화기 댔지만…
“다 듣고 떠나셨어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코로나 감염 환자가 응급실로 내원했다. 집에서 지내던 고령의 할머니였다. 의식이 있었으나 가쁜 숨을 내쉬느라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고열과 기침까지 동반해 코로나 감염의 전형적인 악화 양상이었다. 몸이 전반적으로 말라 평소에도 거동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였다. 우리는 하얀 방역복을 입고 보안 고글을 쓴 채 환자를 격리 치료실로 넣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힘겹게 호흡하는 모습이 나쁜 예후를 짐작게 했다.

할머니는 혼자 삶을 건사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했다. 하지만 응급실에 온 건 할머니뿐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딸도 코로나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사흘 전 가족 한 명이 확진된 이후 할머니를 포함한 온 가족이 확진되어 자가격리중이었다.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코로나 격리 중에는 병원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나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아, 약도 직접 드실 정도로 상태가 나쁘지 않았으나, 점차 숨을 가쁘게 쉬셔서 신고했다고 했다. 또 모두 격리 중이라 갈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일러스트=이철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정이었다. 팬데믹 이후 숱하게 겪었던 일이기도 했다. 나는 안심하고 집에 계셔도 된다고 답했다. 일단 기본적인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고 상태가 악화되거나 중요한 검사 결과가 나오면 유선상으로 연락하기로 했다. 보호자는 필요한 처치를 전부 부탁했고 늦은 시간이라도 전화를 즉시 받을 것이라고 했다. 수화기 너머로도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가족이 돌보던 할머니는 이제 어쩔 수 없이 의료진의 손에 맡겨졌다.

할머니는 맥이 빠르고 호흡이 거칠었다. 엑스레이부터 전형적인 폐렴으로 뿌옇게 보였다. 마스크로 산소를 투여해도 산소 포화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해열제에도 반응이 없고 동맥혈 검사도 좋지 않았다. 흉부 CT는 더 심각한 소견이었다. 그야말로 바이러스가 양쪽 폐를 전부 점령한 것 같았다. 결과를 확인한 나는 방역복을 입고 집중 치료실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의식이 악화되어 이제는 묻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병세의 진행이 빨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차례 악화 소식을 전한 뒤 두 번째의 통화였다. “최선의 의학적 처치를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심정지가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삽관과 기계호흡, 에크모 밖에 선택지가 남지 않았지만 고령이라 힘들어 보입니다. 솔직히 공격적인 치료를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가족분들의 의견을 모아 연락을 주시지요.” 전화를 받은 딸은 상의할 시간을 달라고 하며 끊었다. 그리고 10분 뒤에 전화가 왔다. “가족들이 상의를 마쳤습니다.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습니다. 편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납득이 가는 결정이었다. 누구도 가족이 무의미하게 고통받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만 이제 우리에게는 할 일이 많이 남지 않았다. 이미 처치는 대부분 마친 상태였다. 집중 치료실에서 코로나 병상을 기다리다가 혹시나 심정지가 발생하면 사망 선언을 해야 했다. 한동안 할머니는 마스크로 쏟아지는 산소를 마시며 집중 치료실에 누워있었고 나는 새벽의 다른 환자를 진료했다. 문득 할머니의 심박수가 떨어져갔다. 창 너머로 본 할머니는 거의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스테이션에서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어 경과를 설명했다.

 

“사망이 임박했습니다. 곧 돌아가실 겁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정적이 흘렀다. 슬픔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내가 바라보는 모니터의 심박이 멈춰 평행선을 그렸다.

“느낌상 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아 밤을 새워서 기다렸어요. 선생님. 상황은 이해하지만 부탁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드릴 말씀이 있어요. 곧 돌아가신다면, 아직 안 돌아가신 거니까, 마지막으로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할머니의 심장은 이미 멈춘 상태였다. 나는 사망 선언을 해야 했다. 창 너머의 할머니는 직관적인 망자의 모습이었다. 적어도 무엇인가를 들을 상태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네.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다만 제가 방역복을 입고 들어가야 해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집중 치료실에는 전화번호가 따로 있습니다. 일 분 뒤 이 번호로 전화를 걸어주세요.”

나는 방역복을 챙겨 입었다. 집중치료실에는 외부와 연결되는 유선 전화기가 한 대 있다. 할머니는 그 전화기를 사용하는 첫 환자가 되는 것이었다. 치료실에 들어가자 전화가 울렸다.

“아까 통화했던 의사입니다. 잠시 뒤부터 말씀하세요. 삼 분쯤 드리겠습니다.”

나는 전화기를 테이블 앞으로 당긴 뒤 동그랗게 말린 전화선을 길게 늘렸다. 수화기는 다행히 어느 정도 할머니의 귓가에 닿았다. 나는 무거운 물건으로 수화기를 고정했다. 수화기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높은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귓가에 닿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았다. 그 말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하얗고 두꺼운 방역복과 김서린 고글 차림으로 치료실 구석에 서 있었다. 방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심전도는 평행선을 그려서 지나치게 고요했고 먼 수화기의 음성만이 방역복을 뚫고 불분명하게 들렸다. 죽음을 많이 보았음에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핏기 없는 얼굴이 수화기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격한 음성에도 얼굴은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고, 다만, 고요하게 듣기만 했다. 오 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말씀을 전부 전달하셨습니까?”

한참을 울다가 간신히 멈춘 사람의 목소리였다.

“네. 이제 되었습니다.”

“환자분은 방금 막 떠나셨습니다. 이제 저희는 시신을 정리하겠습니다.”

“잠깐만요. 선생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답해 주세요. 방금 보셨으니까요. 어머니는 제 말을 분명히 들으셨지요? 모두 듣고 떠나셨지요?”

나는 잠시 멈추었다 답했다.

“… 네. 들으셨습니다. 모두 잘 듣고 떠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배려해주셔서...”

전화가 끊겼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내가 떠나보낸 이들 중에 목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 망자는 없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평행인 심전도에서 돌아와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에 무용한 일이라고는 없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전달해야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랑의 감정과 그것이 쏟아져 나오는 마지막 순간,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숨을 거두고, 또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그 사람을 사랑한다. 숨이 막히는 질병과 아득한 공간이 가로놓여도 그 사실은 전달되어야만 한다. 그것이면 모든 게 충분하다.

 <조선일보 오피니언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중에서 옮김>

 

      이글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동을 받아 같이 공유하고자 옮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