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밟으며 한 밤중이라 하더라도 踏雪夜中去
모름지기 걸음걸이를 어지럽게 하지 말라 不須胡亂行
오늘 내가 남겨 놓은 이 발자국은 今日我行績
마침내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遂作後人程
청허휴정(서산대사)선사의 선시 <눈을 밟으며(踏雪)>
눈길을 걸으면서도
뒤에 남는 발자국까지
걱정하지 마라
사실 그냥 당신 갈 길만
유유히 바르게 가기만 하면 될 일이다.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판단은 뒷 사람의 몫이다.
설사 앞 사람의 발자국을
똑같이 그대로 따라 간다고
할지라도 그건 같은 길이 아니라
뒷 사람이 새로 가는 길일뿐이다.
지나친 머무름은 정체를,
지나친 이동은 불안정을 내포한다.
머물고 있으면서도
늘 떠날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매듭지으며 살고,
반대로 늘 떠돌아 다니면서도
영원히 머물 사람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순간순간 살 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붙박이와
떠돌이의 자격을 갖춘 것이다.
<옮겨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