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스크랩

얼굴이라는 이력서

highlake(孤雲) 2025. 3. 11. 12:37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 대통령이 됐을 때 친한 친구가 주변 사람 한 명을 천거했다.

새 내각에 적임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를 만나본 링컨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 일로 서운했던 친구가 나중에 왜 그 사람을 발탁하지 않았는지 링컨에게 물었다.

둘이 나눈 대화다.

“그 사람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네.”(링컨) “이보게, 얼굴이 어디 그 사람 탓인가?

부모가 준 대로 타고나는 것인데 그런 이유로 유능한 사람을 쓰지 않는다니

말이 되는가?”(친구)

“어릴 때는 부모가 준 얼굴로 세상과 마주할 수밖에 없지.

하지만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네!”(링컨)

 

법정 스님 미공개 강연록 ‘진짜 나를 찾아라’(샘터)에 나오는 얘기다.

마흔이 넘었다는 것은 어른이 됐다는 뜻이다.

법정 스님은 저 이야기를 전하면서 “반죽이야 부모가 했으니 어릴 적엔 허물을

잡을 수 없지만, 어른이 된 뒤의 얼굴은 살아온 삶이 투영된 것이니 책임이 따른다”며

“스스로 자기 얼굴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흔히 얼굴을 가리켜 ‘이력서’라 한다.

이 풍진세상을 살다 보니 주름도 생기고 마음에 금도 그어진다.

그게 얼굴로 다 드러난다고 해서 이력서다. 얼굴은 ‘청구서’라고도 한다.

고물가 시대에 월급만으로 살림을 꾸려 나가려니 걱정이 많은데 얼굴에 근심이

다 비친다고 해서 청구서다.

이력서니 청구서니 하는 표현에는 우리 얼굴의, 우리 인생의 애환이 담겨 있다.

 

얼굴은 ‘얼의 꼴’, 즉 자기 내면세계의 형태다.

사람은 저마다 세상에 하나뿐인 얼굴을 지니고 있다.

“자기 분수에 맞게, 자기 틀에 맞게 행동하라는 의미”라고 법정 스님은 설명한다.

“자기를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남의 자리를 차지하려 든다거나 남의 거죽을 흉내 내려 한다면 이도 저도 아닌

얼굴이 됩니다. 자기답게 살아야 자기 얼굴을 갖출 수 있습니다.”

 

링컨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가 사람을 미추로 판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구가 추천한 사람의 얼굴이 못나서가 아니라 어떤 그늘이나 어둠을 알아본

것이라고 법정 스님은 말한다.

밝은 마음이 만들어낸 얼굴은 껍데기와 상관없이 아름답다.

어느 조각가 말마따나 예술은 돌덩이에다 아름다움을 새겨 넣는 것이 아니다.

원래 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캐내는 것이다.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