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에겐 모두 체취가 있다.
노인은 노인만의 체취가 있고 환자들도 질병에 따라 냄새가 다르다.
난 어렸을 때 젊은 여성들에게서 향기가 나는 이유가 궁금했다.
향수와 화장품 덕분인 걸 나중에야 알았으니 참 늦된 아이였다.
선천적으로 향기가 나는 여성이 있다는 한 중문학자의 말을 난 믿지 않는다.
왕조시대 귀족 여성들은 향낭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물과 접촉하는 일을 만병의 원인으로 여긴 중세 유럽에선 강한 향수로
체취를 가렸다. 향수 산업의 기원이다.
씻지 않는 사람에게선 당연히 냄새가 난다.
1980년대 초 미국 유학 시절 대학원 조교실을 공유한 한 중국 명문대 출신
학생이 기억에 선명하다. 떡진 머리에 체취가 심했다.
덩샤오핑이 개시한 경제개발의 온기가 서민 생활엔 아직 미치지 못했을
당대 중국 현실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1960년대 한국 서민들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야 동네 목욕탕에 갔다.
다닥다닥 붙어 살던 서로 간에 체취를 의식할 여유도 없었다.
생활 악취에서 가장 큰 것은 재래식 변소였다.
1970년대 이후 아파트가 대량 보급되면서 변소는 화장실이 되어
실내로 들어왔다.
한국적 산업혁명이 주거 혁명을 낳고,
서민들도 날마다 따뜻한 물로 목욕할 수 있게 됐다.
생활 수준이 나아지는 데 비례해 사람들은 차츰 냄새에 민감해졌다.
우리가 출퇴근길 만원 지하철과 버스에서 불쾌감을 느끼는 건 사적 공간
침해와 함께 타인의 체취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다.
봉준호 감독의 걸작 영화 ‘기생충’은 이를 ‘지하철 냄새’라고 부른다.
식당에 다녀오면 음식 냄새가 몸에 배듯이 우리네 일상의 냄새를 남에게
숨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기생충’의 주요 모티프인 반지하 집이 상징하는 지하 생활자의 냄새는 옷과 몸,
영혼까지 전방위적으로 스며든다.
그런 냄새를 맡을 일이 없는 상류층에겐 불쾌한 냄새의 침입 자체가 영화
대사처럼 사회생활의 ‘선(line)을 넘는 일’이다.
사적인 차원에 머물렀던 냄새는 바로 이 지점에서 공적인 의제로 폭발성을 갖게 된다.
내게서 풍기는 나만의 냄새는 스스로에겐 그리 불쾌하지 않다.
대다수 인간은 자신의 구취와 땀 냄새를 기분 나쁘게 여기지 않는다.
자기 체취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고유의 내 냄새가 프라이버시의 핵심이란 진실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나의 냄새는 곧 ‘나’다.
냄새의 프라이버시는 인간 존재의 실존적 근원이다.
말년에 구강암으로 수십 차례 수술한 프로이트가 악취 나는 자신과 포옹하기를
애견마저 회피하자 크게 상심한 이유다.
‘지금 나한테 이상한 냄새 안 나니?’라고 물을 수 있는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인간 프라이버시의 핵심을 공유하는 친밀한 관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공적인 사회생활에서 타인한테 ‘당신에게서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건
금기 중 금기다.
상대의 프라이버시와 존엄을 짓밟는 폭력적 행위로 인식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영화 ‘기생충’ 마지막 장면의 파국이 촉발된 이유다.
냄새는 바로 여기서 뜨거운 사회적 의제로 비화한다.
냄새라는 이슈가 서로 간 인정 욕망의 충돌과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 문제로
폭발하는 순간이다.
‘기생충’은 삶과 정치에 숨겨진 비밀을 오감으로 느끼게 하는 영화다.
현대 최대 화두인 사회 양극화가 빚은 인간 소외를 절묘하게 형상화했다.
시각 중심 종합예술인 영화로 체취의 공적 지평을 발굴해 강렬한
‘냄새의 정치철학’으로 승화시켰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냄새를 타인과 세상에 뿌리면서 살아간다.
스스로는 깨닫지 못한 채로.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윤평중의 지천하)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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