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스크랩

사람 보는 잣대, 의(議)와 논(論)

highlake(孤雲) 2024. 3. 28. 12:41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은 아니다.

말에는 일하는 말이 있고 말을 위한 말이 있다.

일하는 말을 의(議)라 하고 말을 위한 말을 논(論)이라 한다.

이 둘을 나누는 잣대는 하나는 일[事]이고 또 하나는 미래와 과거이다.

 

의(議)는 ‘의견’이라고 옮겨야 하는데 정확하게는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의견을 의(議)라고 한다.

책임 당국자들이 그리는 미래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의(議)다.

반면에 논(論)은 지나간 것에 대한 말이다.

반고의 ‘한서’나 사마천의 ‘사기’는 대표적인 논(論)이다.

 

또 큰 사고가 났을 때 복구 대책은 의(議)이고

사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논(論)이다.

의(議)는 미래를 향한 것이고 논(論)은 과거를 향한 것이다.

 

법률 분야는 자연스럽게 논(論)이 지배한다.

법조인 출신들이 잘하는 것은 지난 일을 따지는 것이다.

착각해서 안 되는 것은 같은 법이지만

입법(立法)은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의(議)이다.

그런데 우리 입법부에 사법(司法)하는 법조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들은

미래를 향한 입법보다는 과거를 문제 삼는 특별법을 좋아한다.

 

특별법은 평소 입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문제를 놓고

사후에 그 사건에 맞춰 특정인을 처벌하고자 법을 만드는 것인데,

이런 법은 의(議)가 아니라 이미 출발부터 논(論)일 뿐이다.

 

이번 총선에도 여야 할 것 없이 법조인 출신이 대거 공천받았다.

이들에게 당부하고픈 말은 이제부터라도 논(論)을 버리고 의(議)를 갖추라는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판결하는 일은 내가 남들보다 나은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쟁송이 아예 생겨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使無訟].”

공자가 말한 사무송(使無訟)이 정치의 본령이다.

이번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논(論)하는 사람인지

의(議)하는 사람인지를 잣대로 선택해 보면 어떨까?

 

<조선일보 오피니언(이한우의 간신열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