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를 사는 계집 / 함석헌(咸錫憲)
꽃 쓰러진 배꼽 달고 줄기 달린 꼭지 쓴 줄을
배꼽 줄 떨어진 날부터 먹어 알아온 참외를
"이 참왼 꼭지에 갈수록 더 달다" 하는
"참외 참외" 하며 말 파는 사내 말 곧이 사
대가리 같은 박참외를
한 입 또 한 입 싱겁게 다 먹었구나
남의 말 믿고 맛을 따라
내 혀 도리어 의심하는 어리석은 계집
먹다 남은 쓰디쓴 꼭지 공중에 내던진 후
입 닦고 손 떨고 멋없이 구름 보고 서니
배는 풍랑 맞고 파선한 뱃잔등 같고
빈 주머니만 그 위에 맥없이 목을 매고 달려
지나가는 초가을 바람에 흔들 또 흔들.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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