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한 잔 마시며 / 안희선
친구여
계절이 굳이 겨울로 가야한다면
우리 따뜻한 난로 옆에서
차 한 잔 마시지 않으려나.
오랜 기억 속에서
메마른 나뭇잎은 가만히 얼굴 들어
잊혀진 푸르름으로
차가운 바람에 실려 날아오르고,
세월은 어느 사이
추위에 움추린 하이얀 이끼되어
바위를 껴안고 있다.
그 모습 애처러워
눈가에 이슬이라도 맺힐 수 있는
그런 마음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다면,
충실한 삶의 미명(美名)아래
흐트러진 영혼의 잔해만이라도
불현듯 추스리고픈 애정은
나도 모를 외로운 그림자 곁에
추억처럼 어른거리는 불길.
주저하는 걸음걸이나마
우리 서로에게 다가서서
얼은 마음 녹일 수 있을까.
그래서
천진했던 맑은 미소가
잿빛먼지를 털고
창백해진 입가에 다시 머물러줄 수 있다면,
겨울이 비록 추위로 인생을 저울질하자 해도
차라리 벌거벗은 몸이 되어
삭막한 마음 속에
남아있을지 모를,
최후의 사랑 불태우는
난로는 너와 나의 가슴인 것을.
친구여
그런 따뜻함 넉넉한 난로 옆에서
우리
그렇게
차 한 잔 마시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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