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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미우적(舍美愚敵)

highlake(孤雲) 2024. 12. 10. 13:04

 

舍 : 버릴 사
 美 : 미인 미
 愚 : 어리석을 우
 敵 : 원수 적


​ 미인을 주고 적을 현혹시킨다.

고대에는 여성이 정치투쟁에 이용된 사례가 많았다.

제목은 미인을 주고 적을 현혹시킨다는 뜻이다.

 

정환공(鄭桓公)은 주선왕(周宣王)의 아우로 정(鄭)나라의 개국군주였다.

BC 771년, 신후(申侯)와 견융(犬戎)이 연합해 그를 죽였다.

정나라는 환공의 아들 굴돌(掘突)을 군주로 세웠는데 그가 정무공(鄭武公)이다.

무공은 어떻게든 국력을 기르는 것이 자기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는 유명한 가도벌괵(假道伐虢)이라는 전술로 회(鄶)와 괵(虢)을 소멸한 후

호(胡)까지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호국의 실력은 만만치 않아서 무력만으로 이길 가능성이 낮았다.

우선 그는 사자를 호국으로 보내 사랑하는 딸을 호의 군주에게 시집보내고

영원히 우호관계를 유지하자고 제안했다.

 

호의 국군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무공은 결혼식을 할 때 충분한 예물을 보내줬다.
호의 국군은 정무공이 자기를 진심으로 대한다고 느껴 경계심을 풀었다.

 

그러나 호국에도 제대로 판단하는 노신들이 있었다.

무력을 중시하는 정무공은 음험하고 속임수가 많다.

딸을 시집보내는 것은 절대로 국군에게 말한 것처럼 우호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남에게 말하지 못할 속내를 숨겼다고 생각했다.

특히 정이 지금 군사훈련을 강화하는 것은 호를 병탄하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호국의 군주도 신하들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가 주저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할 때 정무공이 자신에게 간언한 신하 관기사를

죽였다는 소식이 들렸다.

호국의 군신들은 정이 자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우호국으로 생각했다.

 

호국의 군신들은 정무공의 속임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딸을 시집보낸 것은 계책의 첫걸음이었다.

무공은 딸을 시집보내 호군의 마음은 안정시켰지만,

호국의 유식지사들까지 경계심을 풀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호군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첫 번째 단계의 노력마저 허사가 될 것이다.

 

무공은 호국의 군신상하가 모두 정을 진정한 우호국으로여기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간언한 신하까지 죽이는 강수를 두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는 조회에서 신하들에게 물었다.
“회와 괵을 멸한 후 지금까지 출정하지 않았다.

공격을 계속하려면 어디가 좋은가?”
무공의 속내를 알고 있던 관기사가 솔직하게 호국이라고 대답했다.

속내를 들킨 무공은 갑자기 화를 내며 꾸짖었다.
“무슨 말을 하는가! 너는 내가 사랑하는 딸을 호군에게 시집보낸 것을 모르는가?

어떻게 호를 공격하라고 하는가?

너는 호국과의 우호관계를 이간질해 나를 의롭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무공은 즉시 관기사를 끌고 나가 참수하라고 명했다.

동시에 신하들에게 앞으로 누구도 그와 같은 말을 하면 엄벌에 처할 것이라 경고했다.

무공의 조치는 헛수고가 아니었다.

호국의 군신들은 정나라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풀었다.

나중에 정이 기습했을 때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일패도지해 종말을

고했다.

그러나 무공은 호국을 얻기 위해 좋은 신하를 죽이고 딸까지 버리는 짓을 저질러

지독하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했다.

전국시대 조양자(趙襄子)도 미인계로 대(代)국을 얻었다.

그는 누이를 대왕에게 시집보내고, 금은보화까지 주면서 경계심을 풀게 했다.

이후에 구주산(句注山)으로 대왕을 초대해 잔치석상에서 살해했다.

대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조양자는 쉽게 대국을 탈취했다.

 

정치투쟁의 도구에 불과했던 여성들이 당당한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세상은 변했다.

대신들은 정무공이 회국을 멸하고 곧바로 괵국까지 점령한 사실을 잊지 않았다.

 

겉으로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의 태도에 현혹되지 말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