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몸이 불편하다보니 나들이 한번 하기가 여간 번거러운게 아니라
주로 집에만 있는 것이 안타까웠는지 가족들이 가을 단풍구경을 하려
나가자는 성화에 못이기는 척 용기를 내어 나섰다.
우선 고향인 함안 부터 먼저 가기로 하고 어디를 가볼까 하다가 와이프가
작년 가을에 다른 모임에서 군북면에 있는 서산서원을 가보았는데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예쁘더라고 해서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은행나무 가로수는 잎을 떨어뜨리고 나목이 되어가고 이파리만
땅 바닥에 수북이 쌓여있다.
역시 서원 입구의 은행나무도 잎은 다 떨어지고 바닥에 쌓인 이파리 사이로
은행만 조금 주어 왔다.
서원 입구에서 방명록에 우리 가족 다섯명을 기재하고 들어갔다.
서산서원의 내역은 대략 이렇다
1453년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인 원로대신 왕보인 김종서 등 수십인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았다.이로부터 2년뒤 수양대군은 강제로 단종의 선위를 받아
왕위에 오르자 단종을 모셨던 충신들이 세조를 몰아내고 단종을 복위 시키고자
일을 도모 하다가 발각되어 목숨을 잃게 되는데,
이때 목숨을 잃은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를 사육신
이라 부른다
한편으로 이 당시 조정에 나가 벼슬하지 않고 평생 단종을 위해 평생 절개를 지킨
여섯 사람의 신하를 후세인들은 생육신이라 불렀다
곧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성담수,남효온이 이들이다.
이 서원은 함안군 군북면 소재지에서 약 3Km 떨어진 국도변에 있으며 생육신의
위폐가 모셔져 있다
이 서원은 1713년 나라에서 서산서원(西山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나라에서 직접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린 서원을 사액서원이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국가 공인 서원이라는 뜻이다.
서원 동쪽의 산이 백이산인데 산 서쪽에 있는 서원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백이산은 중국의 대표적 충신인 백이 숙제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서산서원은
백이 숙제의 절개에 뒤지지 않는 생육신을 모신 곳이라는 뜻으로 생각 된다.
이 서원은 대원군 서원 철폐령 때 없어졌다가 1981년 생육신 중의 한분인
어계(漁溪) 조려(趙旅) 선생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복원에 착수하여 1984년에
완공되었다. (참조:인터넷 검색)
또 서원으로 들어가는 왼쪽편에는 함안 조씨 독립유공자비를 모셔두고 있다.
주말인데도 서원 안에는 사람 하나 없었고 주차장도 텅비어 있어 조금은 아쉬웠다.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안 둑방 이야기 (0) | 2019.11.20 |
---|---|
함안 악양루 이야기 (0) | 2019.11.18 |
구름의 향연 (0) | 2019.09.20 |
가을은 저만치 와 있었나 보다 (0) | 2019.09.18 |
태풍(사라) 이야기 (0) | 2019.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