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모음

낙화/조지훈

highlake(孤雲) 2018. 4. 23. 15:08



낙화 / 조지훈(1920~1968)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조지훈(1920~1968)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일러스트] 

정원에 밀물져 왔던 봄꽃의 전위들은 이제 다 시들었습니다.

성당 시기 맹호연(孟浩然)의 유명한 시

'춘효(春曉)'의 마지막 두 구 '야래풍우성(夜來風雨聲)/화락지다소(花落知多少)'의

심정으로 매해 꽃을 보내지요.

사육신(死六臣) 성삼문(成三問)의 서늘한 초서 글씨로 된 위의 시를 본 적 있습니다.

그리고도 수백 년 후 일제 말기 지훈(芝薰)은 낙향하여 울분을,

고요하고도 찬란하게 저렇듯 토로했습니다.

혹자는 센티멘털로 취급하기도 합디다만 우습지요.

저 낙화의 핏빛을 600여 년 전 성삼문은 역사 앞에서 되새겨 읽었을 겁니다.

그로부터도 수백 년 후 극성(極盛)의 일제강점기, 밤마다 잠들 수 없던 젊은 선비가

'낙화'를 바라보던 심정을 '지금 여기'로 데려와 되새겨 보는 심정도 생생합니다.

꽃에서 꽃으로 흘러오는 역사가 저러합니다.

꽃은 늘 순방향으로 지지요. 

                                 - 조선일보 오피니언 중에서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22/20180422019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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