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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삶이란 무엇인가? - 안도현

highlake(孤雲) 2017. 12. 14. 11:08


삶이란 무엇인가


                     -안도현-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길을 힘겹게 오를 때,
저기 저 고갯마루까지만 오르면 내리막길도 있다고 생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보자,
자기 자신을 달래면서
스스로를 때리며 페달을 밟는 발목에 한 번 더 힘을 주는것


읽어도 읽어도 읽어야 할 책이 쌓이는 것


오래전에 받은 편지에 답장은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편지가 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우편함을 열어보는 것


무심코 손에 들고 온
섬진강 작은 돌멩이 하나한테
용서를 빌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
살짝 가져다 놓는 것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는 향기가 없으나

사과를 칼로 깎을 때 비로소 진한 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드는 것 처럼
텃밭에 심어놓은 마늘은 매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나
도마에 놓고 다질 때 마침내
그 매운 냄새를 퍼뜨리고야 마는 것 처럼
누구든 죽음을 목전에 두면
지울 수 없는 향기와 냄새를 남긴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알게 되는 것

​그리하여 나의 맨 마지막 향기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 해 보는 것


날마다 물을 주고 보살피며 들여다보던 꽃나무가
꽃을 화들짝 피워 올렸을 때,
마치 자신이 꽃을 피운 것 처럼  머릿속이 환해지는 것


온몸이 꼬이고 꼬인 뒤에 제 집 처마에다
등꽃을 내다 거는 등나무를 보며,
그대와 나의 관계도 꼬이고 꼬인 뒤에라야
저렇듯 차랑차랑하게 꽃을 피울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


꼬리 한 쪽을 떼어주고도 나뒹굴지 않는 도마뱀과
집게발을 잃고도 울지 않고 제 구멍속으로 들어가는 바닷게를 보며
언젠가 돋아날 희망의 새 살을 떠올리는 것


지푸라기에 닿았다 하면 금새 물처럼 흐물흐물 해 지는 해삼을 보며,
나는 누구에게 지푸라기이고 해삼인지 반성 해 보는 것


넥타이 하나 제대로 맬 줄 몰라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풀었다가 다시 매면서

아내에게 수 없이 눈총을 받으면서도 넥타이를 맬 때마다 번번히 쩔쩔 매는 것


식당에서 맛있게 음식을 먹고도
음식을 날라주는 아주머니한테

택시비 하시라고 오천원을 주어야 할는지 만원을 주어야 할는지 망설이다가
한 번도 은근하고 멋있게 주지 못해
그 식당에 갈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술값 계산을 하고 나서도
소주 한 병 값을 더 내지 않았나 싶어
이리저리 머리로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


공중전화 부스에
말끔한 전화카드 한 장이 놓여있으면
혹시라도 새것인가 싶어 카드투입구에 속는 셈 치고 한 번 밀어넣어 보는 것


평생 시내버스만 타던 사람은
택시기본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택시 한 번 타기가 머뭇거려지고,
평생 택시만 타던 사람은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몰라서 시내버스 한 번 타기가 머뭇거려 지는 것


초등학교 앞을 지나갈 때
운동자에서 체육복을 입고 정구공처럼 통통 튀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이 통통 튀는 것


쓰레기 봉투로도 써먹지 못하고
시원한 물 한 동이 퍼담을 수 없는 몸뚱이 하나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개고기를 뜯는 것


물구나무를 서야 바로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 처럼
뒤집어 놓았을 때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것


내가 한 바가지의 물을 쓰면
나 아닌 남이 그 한 바가지의 물을 쓰지 못하게 됨을 아는 것


여름날 저녁에 온 식구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 뒤에
첫 눈이 오는 겨울 저녁을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사는 것


겨울 밤,
가끔씩 서로 가려운 등을 긁어주는 것


가끔씩은 서로 싸리나무 회초리가 되어
차르륵 차르륵 소리가 나도록 때리기도 하는 것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없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없으나
늘 떠나고 싶어지고 늘 머물고 싶어지는 것


바깥으론 따뜻하고 부드럽고,
안으로는 차갑고 단단한 것


단칸방에 살다가,
아파트 12평에 살다가, 24평에 살다가,
32평에 살다가, 39평에 살다가,
45평에 살다가, 51평에 살다가,
63평에 살다가, 82평에 살다가,
문득 단칸방을 그리워 하다가...

결국은
한 평도 안되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 눕는 것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물어도 물어도 알 수 없어서
자꾸 삶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되묻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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