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모음

낙타의 생/류시화

highlake(孤雲) 2017. 12. 13. 09:53

낙타의 생 /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 시집<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에서 -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7.12.15
울릉도/유치환  (0) 2017.12.13
이별가/박목월  (0) 2017.12.11
12월에는 사랑을 하겠습니다/윤보영  (0) 2017.12.11
아날로그 / 신달자   (0) 2017.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