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생 /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 보고서야
무릎 기도 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 시집<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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