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속에 찬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어라
- 김종서(1383~1453)
살을 에는 겨울바람 속에 고원에 올라
광활한 만주 쪽을 보며 발하던 500년 전 한 장수의 기개가 이와 같다.
가슴에 써늘한 바람이 지나가는 듯하다.
그의 담대함과 왕조의 탯자리 터를 확보하려는
세종의 의지에 힘입어 6진이 설치되고
오늘의 두만강 국경과 함경도가 있다.
김종서는 무과가 아니라 문과 급제자였다.
그것도 약관 16세에.
그러나 문약하지 않았다.
그를 베고야 수양은 왕이 될 수 있었다.
모두 다 아니라고 하고 모른다고 바보 흉내를 낸다.
괄태충 같은 무리들을 듣고 보는 우리도 따라서 비루하고 천박해져 간다.
빈대나 벼룩이 되는 기분이다.
나라의 마음이 떳떳함을 잃고 망해 가는 경로가 있다면 이러할 것이다.
‘긴 파람 큰 한소리’의 의인은 없는가.
머리 풀고 내 탓이라고 소리쳐 나서는 자 없는가.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옮겨 온 글>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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