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쁨을 따라갔네
작은 오두막이었네
슬픔과 둘이 살고 있었네
슬픔이 집을 비울 때는 기쁨이 집을 지킨다고 하였네
어느 하루 찬바람 불던 날 살짝 가 보았네
작은 마당에는 붉은 감 매달린 나무 한 그루 서성서성 눈물을 줍고 있었고
뒤에 있던 산, 날개를 펴고 있었네
산이 말했네
어서 가 보게, 그대의 집으로……
-강은교(1945-)
오두막에 슬픔과 기쁨이, 이 둘이 살고 있는데 번갈아 집을 지킨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집에 오막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가을에는 찬바람이 불어 쓸쓸한 마음이 일어나기도 하니 세상의 모든
집이 오두막집으로 보이기도 한다.
나도 시월의 오두막에 살짝 가서 보았다.
조랑조랑 매달린 감이 발그스름하게 익고 감잎이 물들고,
석류도 익어 껍질이 쩍 갈라져 있었다.
툇마루에는 따서 널어놓은 고추가 붉고,
싸릿개비로 만든 둥글넓적한 채반에는 갓 딴 팥이 마르고 있었다.
댓돌에는 벗어놓은 신발이 가지런했다.
장화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작은 마당은 산그늘에 덮였고,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초라한 집이었지만 슬픔이 집을 비운 사이에 화색이 도는 기쁨과
고요와 평화가 시월의 집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을은 더 깊은 오솔길로 걸어서 들어가고 있었다.
<조선일보 오피니언(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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