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6.25의 날에

highlake(孤雲) 2024. 6. 25. 16:55

6.25의 노래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갚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하여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리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이 노래는 내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매년 6월 25일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기념식을 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마 요즘 학생들은 이런 노래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고, 6.25가 뭔지도

모를 것이다.

엊그제 같이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 유공자들에게 마음으로 보훈하자고

한 것 같은데, 이제 며칠이면 그 보훈의 달도 끝나고 우리들은 또 언제 그랬냐

잊고 지내게 될 것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6.25韓國戰爭 당시 軍人으로 어느 戰線, 어느 골짜기에서

戰死하셨는지, 아직 그 遺骨조차 찾지못한 채 늙어가고 있는 戰歿軍警

遺子女이다.

그래서 나는 6월에는 특히 내아버지를 기리는 마음이 더욱 사무친다

 

나는 6.25 戰爭 당시 5살 어린이로 避亂을 가야했고 戰爭이 끝나고도 헐벗고

굶주린 戰爭의 慘酷한 廢虛속에서 어렵게 살았기에 그 慘狀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학교에서 나눠주던 옥수수 가루 죽으로 끼니를 때우고 求護物資로 옷을

입었던 그 어려웠던 시기를 살았기에 '自由平和'가 얼마나 所重한지를 잘

알고있는 保守右派 꼰대이다.

6월 한달만 護國報勳의 달이니 뭐니 할게 아니라 報勳을 日常으로 삼아

遺功者들의 삶을 보살피고 그遺族들의 힘든 삶을 도와야 할 것이다.

 

이제 또 6월이 지나면 國會는 與.野 黨代表 選擧가 있다.

아마 또 民生은 뒷전이고 오로지 黨代表選擧에만 휘말리게 될 것이다.

 

與黨 代表 候補들에게 부탁하노니,

부디 서로 흠집내는 네거티브(Negative)로 支持者와 國民을 줄서기로 갈라

치기하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誹謗戰이 아닌 오직 국민과 나라를 위한 

政見과 未來의 비젼(Vision)으로 정당하게 선거에 임해주기를 바라는 늙은이

마음 懇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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