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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박경리

highlake(孤雲) 2020. 7. 28. 11:43

산다는 것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 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이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모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면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박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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