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로 모든 대학이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교수 각자 녹화한 강의 영상이 인터넷에 쌓였다.
학생들이 이를 집에서 들으면서 특이한 현상이 보인다.
'교수님 강의'를 원래보다 빨리 돌려 듣는 것이다.
1.2배나 1.5배는 기본이고, 2배속으로 듣는 학생이 꽤 많다.
그렇게 하면 말이 너무 빨라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학생들은 '신기하게' 다 알아듣는다.
비대면·비접촉 '언택트(untact)' 시대를 맞아, 요즘 온라인 심포지엄, 학회, 회의가 많다.
반응은 두 패로 나뉜다. 대체로 높으신 분들은 온라인을 꺼린다.
익숙지 않은 데다, 뭔가 심심하게 느낀다.
표정과 제스처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과 지식이 스며 있는데,
온라인에서는 그런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위와 위계에 의한 농담이 없으니 재미도 없는 게다.
회장님도, 전무님도 분할된 '줌(zoom) 화면' 속 여럿 중 하나일 뿐이다.
회사 중역이 재택근무를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그들은 "어떻게 빠져나온 집인데…" 하면서, 온종일 집 밖 세상서 머문다.
반면 젊은이들은 온라인을 즐기는 편이다.
말하는 이의 콘텐츠에 집중하게 돼서 좋단다.
다만 15분 넘게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온라인 회의나 강의가 길어지면 대면보다 더 지루해 한다.
50분 수업, 10분 휴식은 학교 수업 시대의 룰이지, 온라인서는 아니다.
60분 강의이더라도 적어도 3명의 각기 다른 연사와 아이템이 등장해야 한다.
어떤 학생들은 교수님 동영상에서 말과 말 사이 숨 쉬는 간극을 편집해 지운 동영상을 본다고도 하니.
그들에게 2배속은 뉴 노멀(new normal)이다.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전문의
나이 들면 걷는 속도가 느려지듯 말하는 빠르기도 준다.
뜻은 뇌의 몫이지만, 말은 성대와 혀, 뺨 근육 움직임의 결과물이다.
노화 과정서 근력이 없어지면, 혀 근육도 약해져 설압(舌壓)이 떨어진다.
고(高)혈압과 저(低)설압은 노년의 숙명이다.
의 발랄함이 사라지면, 사레에 잘 걸리고, 발음이 불명확해지고, 대화 속도가 떨어진다.
고령자의 혀 움직임 강화를 위해 숟가락 같은 것을 입에 물려서 혀 힘을 쓰게 하는
설압 재활 훈련을 하기도 한다.
파·타·카는 혀끝이 각각 앞쪽·위쪽·뒤쪽에 놓이며 소리 나는 발음이다.
파파파…, 타타타…, 카카카…를 연이어 빨리 말하지 못하면 혀 근육의 기민함이 약해진 징표다.
1초에 최소 6개의 '파'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발성 속도에는 뺨 근육도 동원되는데, 뺨을 적절히 오므렸다 부풀렸다 하며 말하기를 조절한다.
혀를 쭉 뺐다가 좌우상하로 돌리는 스트레칭과 입 다물고 뺨을 한껏 부풀리는
장력 운동이 인생 후반기에는 매일 필요하다.
목소리가 나오려면 폐에서 공기를 뿜어줘야 한다.
'공기 반, 소리 반'이라고 하듯, 폐에서 나온 공기가 성대와 구강을 통과해야 소리가 난다.
공기를 내뱉는 힘은 횡경막과 갈비뼈 근육 수축에서 온다.
그러기에 "끝까지 숨 쉴 수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농담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막판에는 숨 쉴 근육 힘조차 없어 저승길을 재촉한다.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환자나 근감소증 노인에게 작은 빨대를 입에 물고 바람 부는 훈련을 시키는 이유다.
노인에게는 이런 호흡 근육 피트니스도 필수다.
사람의 송풍 능력은 들이마신 공기를 내쉴 때 첫 1초 만에 얼마만큼 많이 내보낼 수 있느냐로 측정할 수 있다.
순간의 관심이 중요해진 온라인 세상서는 다들 호흡이 빨라진다.
중간에 잘리지 않으려면, 짧아야 하고 찰나이어야 한다.
광고 동영상도 15초 내에 끝낸다. 말도 빨라야 하고, 숨도 가팔라야 한다.
여유와 여백에서 느껴지는 멋의 가치는 점점 사라진다.
조급함은 앞전이고, 느긋함은 뒷전이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영상 통화 진료가 일상이 된 미국서는 병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아예 원격 진료를 권유하는 화면이 뜬다.
특정 온라인 프로그램을 깔면 진료가 쉬워진다는 안내도 나온다.
이 과정서 디지털 양극화가 생긴다.
온라인과 모바일에 익숙하지 않은 이는 비대면 진료 접근성이 떨어져
건강관리에 구멍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와 고령 계층은 기술적으로 의학적으로 온라인 세상과 엇박자다.
다가올 초고령사회가 코로나와 만나, 디지털 부조화와 소외, 고립이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어찌하랴, 둔감력을 키우든가, 스피드에 적응하든가.
언택트 시대 온라인 세상서 자기 경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도 근력 강화와 설압 증강에 나서야 한다.
-조선일보 오피니언 중에서 -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21/20200721000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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