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이성복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 아버지가 우겨서
딴 이름의 학교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친구들 보기 창피하다고 밥도 안 먹고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던 학교에 들어가 처음 교복 입고
노란 교표 달린 모자 쓰고 찍은 사진을
아버지는 늘 지갑 안에 넣고 다니셨습니다
점심값 아끼느라 떡이나 오뎅 사먹고
동대문에서 서대문까지 그 먼 퇴근길 걸어오시던
아버지는 그토록 내가 자랑스러웠던가 봅니다
시험 잘 보고 와도 칭찬 한번 안 하던 아버지,
뭘 좀 잘못하면 눈만 흘기시던 아버지,
정말 내가 크게 잘못한 날에는 자기 종아리 걷고
혁대 풀어, 나보고 때리라고만 하셨습니다
올여름 지나면 아버지 돌아가신 지 오 년,
언제까지 아버지가 내 사진을 지갑 속에 넣고 다니셨는지 모르지만,
지금 내 지갑에는 이십 년도 더 지난 우리 애들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봄 아파트 정원에서 둘째는 쪼그리고 앉아
깔깔 웃고, 첫째는 동생 목을 휘어 감고 있습니다
지금 그 아이들 군대 갔다 오고 대학 졸업하고
취직도 않고 빈둥거리지만,
나는 녀석들이 지갑 속에서처럼 언제까지나 자라지 않기를 바라는지 모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그 애들을 보듯이 육십 년대 후반,
경리 일 그만두고 집에서 쉬는 동안
아버지는 이따금 내 사진을 들여다보셨겠지요
빳빳한 교복 칼라에 단정하게 모자 쓴 그 아이가
언젠가 그의 가난과 실직과 시들한 살림살이를
하루아침에 바꿔주길 바라셨겠지요
평생 울컥,
화내는 취미밖에 없었던 아버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도 경로당 두루마리 휴지를
한 움큼 뜯어 오다 동네 노인들한테 창피 당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냉동고 유리문 너머 입관하실 때도
영정사진 모시고 산을 오를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독한 아들이었습니다.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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