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의 꽃/ 정희성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청옥산 기슭
덜렁 집 한 채 짓고 살러 들어간 제자를 찾아갔다.
거기서 만들고 거기서 키웠다는
다섯 살 배기 딸 민지.
민지가 아침 일찍 눈을 비비고 일어나
말없이 손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저보다 큰 물뿌리개를 나한테 들리고
질경이 나싱개 토끼풀 억새.....
이런 풀들에게 물을 주며
잘 잤니,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게 뭔데 거기다 물을 주니?
꽃이야, 하고 민지가 대답했다.
그건 잡초야, 라고 말하려던 내 입이 다물어졌다.
내 말은 때가 묻어
천지와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하는데
꽃이야, 하는 그 애의 말 한마디가
풀잎의 풋풋한 잠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었다.
- 글 / 정희성 시집 < 거미가 짓는 집 > 2001 에서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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