沒雲臺(몰운대)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에는 해수욕장과 몰운대(沒雲臺)유원지가 있다.
해질녘 하구쪽에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落照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沒雲臺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곳은 景觀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원래 16세기까지는 沒雲島라는 섬이었다가 점차 洛東江에서 밀려온
土砂가 쌓여 陸地와 連結되었다고 한다.
奇巖怪石과 鬱蒼한 소나무 숲,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져 빼어난 景觀을
자랑한다.沒雲臺에는 朝鮮 시대 地方 官衙 建物의 하나인 다대포 客舍
와 壬辰倭亂 때 李舜臣 將軍이 부산포 海戰에서 勝戰을 거둘 때 큰 功
을 세우고 순절한 충장공 정운을 기리는 정운공 殉義碑가 있으니 산책
을 할 때 꼭 들러 보자.
客舍란 조선시대 지방 관아(官衙:관청) 건물의 하나로 수령(守令)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궁궐)을 향해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으로 근엄
하게 지어져 사신(使臣)이 있을 때는 그 사신의 숙소가 된 곳이다.
조선 시대에 부산에는 다대포 첨사영 이외에도 부산진성 안에 공진관
이란 이름의 객사와 옛 좌수영에 영파당(寧派堂)이란 이름의 객사가
있었고, 동래부에 봉래관(蓬萊館)이라 이름한 39간(間)이나 되는 객사
가 있었다. 그리고 초량 왜관에 倭관으로 오가는 사람을 위해 대동관
이란 객사에 조선왕조 건국 이래의 역대국왕의 전패(殿牌)를 봉안하고
있었다.
그때는 일본에서 사신이 오면 이 전패에 먼저 예를 올려야 했다.
위에 말한 객사들은 지금으로부터 90년이전(한일합방이전) 또는 갑오
경장 이전 까지는 부산에 모두 다 있었으나 지금은 다대포진 객사만
남아 있다.다대포진 객사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지붕과 기둥과 밑뿌리
의 하방(下防)만 남아 있을 뿐 벽체는 허물어진 뒤다.
그때 회원관이라 불린 이 객사도 본래의 다대 포진이었던 지금의 다대
초등학교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1970년 몰운대 현재의 자리
에 원형그대로 이전 복원된 것이다. 한데 다대포를 비롯한 남해안은 예
부터 왜구의 노략질이 심했던 곳이다.
그 왜구를 막기 위해 수군의 절도사영을 두었는데 조선조 초기의 다대
포영은 부산포 절제사영 휘하의 만호영(萬戶營)이었다.
그때는 장림포(長林浦)에 있었다. 그뒤 다대포로 옮겨지고 명종이후 다
대포 만호영은 부산포와 같은 진(鎭)으로 승격되었다.
임진 왜란 이후는 부산포진과 함께 그 중요성에 비추어 딴 진보다 2배
의 병선을 가지게 되면서 다대포진의 첨사는 북경(北境)의 만포진첨사
(滿浦鎭僉使)와 같이 정 3품 당상관이 임명되었다.
이 다대포진 객사의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1970년 몰운대로 옮
겨지고는 산꼭대기에 벽체가 없이져서 누대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이상 사하구 문화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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