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엔 책 읽고 공부하느라 밤을 새우고 새벽닭 소리를
신호 삼아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제 늙고 보니 초저녁 일찍 든 잠이 한밤중에 한번 깨면 좀체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먼동이 어서 트기만을 기다리지만 밤은 어찌 이리도 긴가?
어둠 속에 웅크린 것은 지난날의 회한뿐이다.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문해피사(文海披紗)에 보니 노인이 젊은이와 반대로 하는 일의
목록이 나온다.
'밤에는 잠을 안 자고 낮에 깜빡깜빡 존다.
아들은 사랑하지 않고 손자만 사랑한다.
근래 일은 기억 못 하고, 아득한 옛일만 생각난다.
울때는 눈물이 안 나오고, 웃을 때 눈물이 난다.
가까운 것은 안 보이고, 먼 데 것이 보인다.
맞아야 안 아프고, 안 맞으면 아프다.
흰 얼굴은 검어지고, 검던 머리는 희어진다.
화장실에 가면 쪼그려 앉기가 힘든데, 인사를 하려다 무릎이 꺽어진다.
이것이 노인이 반대로 하는 것이다
(夜不臥而書瞌睡, 子不愛而愛孫. 近事不記而記遠事,哭無淚而笑有淚.
近不見而遠却見,打却不疼.不打却疼.面白却黑,髮黑却白.如厠不能蹲,
作揖却蹲. 此老人之反也)"
자식은 미운데 손주는 예쁘다.
어제일은 까맣게 잊어도 수십년 전의 작은 일은 새록새록 기억난다.
우는데 눈물이 안 나와 당황스럽고, 웃다가 눈물이 나서 운다.
신문의 활자가 흐려지더니 저만치 떨어져서야 겨우 보인다.
안마를 받아야 안 아프고, 안마를 안 받으면 온몸이 쑤신다.
피부는 검어지고,머리털은 하얘진다.
화장실에서는 무릎 꺽기가 힘들어 안간힘을 쓰다가도,
인사한다고 몸을 숙이려다 무릎이 먼저 푹 꺽인다.
아! 늙었구나 !!!!
이 누구의 허물인고.
출처/조선일보 정민의 세설신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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