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청어를 매우 좋아한다.
그 청어는 영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북해나 베링해협에서 잡혔다.
그러나 성질이 워낙 급한 탓에 육지에 도착하기 전에 거의 죽었다.
청어가 잡히는 곳은 북해나 베링 해협 같은 먼 바다였기에 싱싱한 청어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배에 싣고 오는 동안에 대부분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청어는 냉동 청어에 비해 2배정도 비싼 값에 팔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살아있는 청어가 런던 수산시장에 대량으로 공급
되기 시작했다. 그 비결은 청어를 운반해오는 수조에 청어의 천적인 물메기
몇 마리를 함께 넣는 것이었다.
물메기는 곰치라 불리는 사나운 육식 어종으로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아구와
흡사한 모양새다. 그러면 청어들은 물메기에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힘껏
도망 다닌다. 그런 긴장이 청어를 살아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미꾸라지 양식장에서 메기 몇 마리를 함께 넣는 것도 그런 이치이다.
토인비가 청어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던 것은 가혹한 환경이 문명을 낳고 인류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었다는 자신의 역사 이론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를 청어의 법칙 혹은 메기의 법칙이라 부른다.
다음은 캐나다의 사례이다. 캐나다 북부 초원 지역에 사슴과 이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천적 이리 때문에 사슴의 개체수가 빠르게 줄어들자 캐나다 주 정부에서는
이리 박멸 작전에 나섰다.
이리들이 숨기 어려운 한겨울에 사냥총으로 대대적인 사냥을 했던 것이다.
이리가 사라지자 숲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사슴의 개체수가 급격히 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슴들의 번식력이 크게 떨어지고 병약해지면서 집단으로
병들어 죽어갔다. 천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캐나다 주 정부에서는 지금 다시 이리 복원 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 미주리 주의 호수에 사는 잠자리 애벌레를 포식 물고기인 블루길 곁에서 키웠다.
수조에 칸막이를 쳐 천적의 냄새만 맡을 뿐 직접 잡아먹힐 걱정이 없는데도
애벌레의 사망률은 포식자가 없는 수조에서보다 4배나 높았다.
스트레스가 면역 약화를 불렀기 때문이다.
포식자와 먹이로 이뤄진 생태계의 먹이그물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육식동물이 약하고 병든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살아남은 강한 초식동물이 다시 늘어난다는 식의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관계가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직접 잡아먹지 않고도 먹이동물의 행동과 생리 변화를
통해 생태계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메기(청어)론’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을 합리화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미화하는 치명적 약점을 지닌다.
최근의 생태 연구는 과학적으로도 그 주장이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굳이 과학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과밀한 수조에 메기를 넣어 미꾸라지를 놀라게 하면
당장은 생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머지않아 산소와 에너지 고갈로 사망률이
높아질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옮겨 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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