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찰스 콜슨(전 닉슨 대통령 특별 보좌관)은 미국 의회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순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순간은 인도 캘커타의 고 테레사 수녀가 미국
국회를 방문하여 연설했던 때라고 했다.
미국 사람들은 연설을 들을 때 연설자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는데
이상하게도 테레사 수녀가 연설을 마치자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오히려 침묵만이 감돌았다고 한다.
숨막히는 감동과 전율이 그들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박수를 칠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마지막 테레사 수녀가 던진 한 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다스릴 자격이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 (1910∼1997)는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1남2녀 중 막내로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다.
아버지는 유명한 건축업자였고 테레사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풍요롭게 성장했다.
그러나 그녀가 일곱살 되던 해 아버지는 의문의 변사를 당했다.
아버지의 동업자들이 전 재산을 빼돌려 가족들은 졸지에 거리에 나앉고 말았다.
테레사는 그때 비로소 자신의 주위에 비참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어머니, 저는 평생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어요”라고 말했다.
테레사는 가족을 떠나 로레타 수녀원에 들어갔다.
1929년 아일랜드 로레타 수도원 소속으로 인도 성마리아 여학교에 부임했다.
어느날부터 그녀는 창문 너머 거리의 한센병(나병) 환자들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나는 그들의 눈에서 두려움을 보았습니다.
적절한 의료 혜택을 받아본 적이 없는 두려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두려움을
보았습니다”고 말했으며 그녀는 그러한 두려움을 마음속으로부터 떨쳐버릴 수 없었다.
테레사는 마침내 결심하고 1948년 수녀원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1952년 '죽어가는 사람의 집'을 만든 데 이어 '버려진 아이들의 집',
'나환자의 집'등을 열었다.
그녀는 빈자들을 위한 ‘사랑의 선교회’를 만들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약 15만명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의료혜택을 주고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었다.
그는 일생을 이처럼 가난한 자, 의지할 곳 없이 죽어가는 자,
한센씨병 환자 사이에서 그들과 다름없이 빈곤하게 지냈다.
가난한 사람처럼 살지 않으면서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저기 수선한 옷 세 벌과 낡은 신발, 십자가와 묵주가 그가 가진 전부였다.
그녀를 만난 사람들 모두 '거친 손에 터진 발,주름투성이의 자그마한 할머니'로
기억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여름엔 시멘트 바닥, 겨울엔 거기에 얇은 천 하나 깔고 지내면서 환자와 장애아를
돌보는 그에게 누군가 돈과 지위를 갖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느냐고 묻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겐 위를 쳐다볼 시간이 없답니다."
테레사 수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짧지만 감동적이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진정한 사랑은 이것 저것 재지 않습니다.
"그저 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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