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세상의 정도는 불성(佛性)이다

highlake(孤雲) 2023. 10. 23. 15:02

『삼(麻)을 짊어지고 떠난 두 사람이 길을 달리하여 은산(銀山)에서 만났다.

한 사람은 삼(麻)을 버리고 은(銀)을 가진다. 다른 한 사람이 말한다.

"나는 이왕에 삼을 지고 있다. 삼을 버리고 은을 가질 수는 없다."

다시 〔이번에는〕 금산(金山)에 이르자 〔한 사람은〕 은을 버리고 금을 가진다.

다른 한 사람이 말한다. "나는 이왕에 삼을 지고 있다. 삼을 버리고 금을 가질 수는 없다."

금은 열반, 삼(麻)은 생사에 비유된다.  (역대법보기의 정중 무상 선사 법어) 』

1960년대 대처 비구 정화 때, 김천 청암사(靑巖寺)에서 큰절은 대처승이 주지를 하고 있고,

우리는 극락전에 고봉스님을 모시고 강원을 했는데, 학인 삼십여명이 큰 절에 몰려가서

대처승을 정화하려고 했는데, 대처승 중에 88살 되는 법우 노장이라는 분이 있었다.

그분이 출가해서 20년간을 단전호흡을 했는데, 가부좌를 한 채로 땅에서 1m 정도를 붕 떴다.

단전호흡을 해서 그만큼 내공이 생겼는데, 배가 봉세기(짚으로 만든 그릇) 엎은 것처럼

솟았는데 얼마나 딴딴한지, 누워있으면 서너 사람이 발로 밟아도 조금도 안 들어갔다. 

 

대처승들을 쫓아내려고 가자 그분이 "너희들이 뭔데 여기 와서 이러느냐?"

 하고 소리 지르며 방에서 나오지 않으니 고봉스님이 주장자를 집고 내려가서 문 밖에서 

불렀다.
"법우~!“

"누군가?"

"나 고봉이네.“ 

"뭐하러 왔는가?“

"내 오늘 한마디 얘기 좀 하려고 왔네."

"석가가 온다면 나가볼까, 나는 안 나가!" 
그러자 고봉스님 왈,
"삼(麻)짐을 삼십리를 지고 가다가 은덩어리를 만나면 그대는 은덩어리를 안 지고 가고 

삼을 그대로 지고 갈 사람일새!“
그래도 아무 말이 없었다. 고봉스님이 다시 말하길,
"은을 한참 지고 가다가 금덩어리 만나면 그때는 은을 지고 가지, 

금을 지고 갈 사람이 못 되네~” 
여기 법보기에 나오는 바로 그 말이다. 그래도 방안에서 일체 말이 없었다. 

그러니 고봉스님 또 말하길,
"그대가 이 문중에 들어와서 외도의 잘못된 길로 간다면 처음부터 절에 안 들어오는 것만도 

못한 것인데, 그대는 반드시 잘못된 과보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셨다. 

 

그후 법우 노장이 갑자기 돌아갔다. 자기는 300년을 산다고 장담을 했고, 앉아서 가부좌한채로 

한 1m 정도 허공에 뜨는 걸 보고 누구나 “대단하다” 했는데, 

고봉스님한테 한 방 맞고는 바로 얼마 안 돼서 돌아간 거다. 

 

절에 다니는 스님이든 신자든, 올바른 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올바른 공부를 못하고 

딴 공부하는 사람도 많고, 또 불교를 믿지 않는 다른 종교도 수 없이 많은데, 

전부 외도요 정도가 아니다. 
이 세상의 바른 정도는 불성(佛性)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부처의 마음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건 영원한 대자비심이요 대지혜요 

대광명이요 대행복이요 대만족인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잘못된 사고방식에 빠져서 헤매니까 

잘못된 것이다. 자기한테 있는 불성의 마음자리를 믿어야 된다. 

자기의 불성의 마음을 바로 믿는 사람은 바른 공부를 할 수가 있고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예전에 어느 수좌가 "내 공부 내가 하지, 다 필요 없다." 이러면서 산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바위굴 밑에 천막 하나 쳐놓고 사는데, 누가 가도 절대 말 안 듣고 자기 혼자

생각으로 하더니 나중에는 정신이 돌아가지고 갑자기 뛰어내려와서 미친 짓을 했다.
또 한 사람은 어느 누구 말도 안 듣고 자기 혼자 하면서 자꾸 깨달았다고 하니까,

"그러면 이제 대중 속에 와서 대중을 위해서 살아주시오." 

 

깨달았다면서 그걸 안 한다고 하면 가짜가 되니까 내려와서 대중 속에 사는데,

사흘도 안 돼서 어느 하판 스님하고 대판 싸움을 하더니 그만 걸망지고 달아났다.

그게 왜 그럴까?

누구의 간섭 안 받고 자유롭게 고요히 자기 혼자 하는 걸 익힌 그게 병이다.

그게 습관이 돼 가지고 어디 가서 사람들하고 같이 섞여 살지를 못한다. 아주 못 쓰는 거다.

그래서 부처님이 신신당부를 하시길, 대중이 사는 속에서 공부를 해야 대중 덕택으로

공부를 성취한다고 하셨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부딪혔을 때 나를 돌이켜보고 스스로 점검할 수 있다. 

자신의 역량을 알 수 있고 자기 그릇이 어느 정도라는 걸 알게 된다. 

그때 본인이 '아, 내가 아직 공부가 안 됐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대중 속에서 대중과 더불어 융합을 잘하고 화합을 잘하고 모든 걸 잘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돼 있는 사람은 잘못된 사고방식, 중생의 망상을 다 항복을 받아서 금강경에 나오는

사상(四相)이 없는 사람이다. 

 

(대원큰스님 역대법보기 강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