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스크랩

웃기는 아들

highlake(孤雲) 2022. 10. 25. 12:49

연극하는 아들 걱정하는 부모님께 “언젠가 웃게 해드릴 것” 다짐
임종 못한 아버지 빈소서 정장 마련 못해 꽉 끼는 옷 빌려 입고
사십구재선 실수로 남의 큰 옷 입어… 눈물 짓던 어머니도 빵 터져

 

내가 연극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많이 당황했다.

나는 원래 사람과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부끄럼을 타는 성격이었다.

런 내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주로 코미디를 연기한다니. ‘누군가한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애가, 어떻게 누군가를 웃길 수 있지?’ 나를 말없이 바라보는 두 분의

눈빛은 대략 이런 뉘앙스였다. 언젠가는 꼭 두 분을 웃겨드리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공연에 쉽게 부르지 못했다.

극단을 만든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자신이 없었다. 수많은 관객의

웃음과 환호 속에서 활약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그때의 우리 공연은 관객이 별로 없었다. 밀린 여름방학 숙제처럼,

1년 2년 3년이 지나갔다.

마침내 큰 극장에서 좋은 기회로 공연을 올릴 수 있게 되었는데,

거짓말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일러스트=이철원

 

나는 그때 그 극장의 공연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매표소에 줄을

선 채로, ‘여기서 공연하면 두 분을 당당하게 웃겨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고,

나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계속 울면서 정신없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도착하고 나서야 내가 검은 정장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빌려주는 정장이 있다고 해서 따라갔다.

 

문제는 내가 좀 작아서 그런지 어른용 정장 중에는 맞는 게 없었다.

직원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례지만 아이용 정장 중에 가장 큰 걸

입어보시겠어요?” 다행히 어느 정도 맞았다.

(요즘 아이들은 성장이 정말 빠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어느 정도’만 맞았다는 것이었다. 상의가 작아서 절을 할 때

양팔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있는 힘껏 팔을 올리면 상의가 배꼽 위로 올라갔다.

그럴 때마다 나도, 조문객도, 간신히 웃음을 참으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어머니도 경황이 없었는지 발인날이 되어서야 내 옷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 사진을 들고, 정장 상의가 올라간 채 걸어가는 아들을 보며 조용히

한마디를 하셨다.

“내 아들이 이렇게 작을 리가 없는데…” 장례식이 끝나고, 시간이 흘러,

사십구재의 전날밤이 되었다.

나는 장례식 때의 교훈을 생각하며 며칠 전부터 맞춤 정장을 준비해두었다.

문제는 그 전날 밤이 극단의 마지막 공연 날이었다.

세트를 철수하고 짐을 정리하고 연습실에서 뒤풀이를 했다.

내가 극단 대표였기에 일찍 자리를 뜰 수 없어서, 연습실에서 밤을 새운 후

사십구재에 가기로 했다.

 

극단 단원 중에 키가 190이 넘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의 공연 복장이

정장이었다. 하필 이 친구가 내 옆에서 술을 마셨고, 내 옆에 자신의 정장

가방을 놓아둔 채, 내 옆에서 잠들었다.

나는 새벽에 깜빡 잠이 들었다가 부랴부랴 일어나 정장 가방을 챙기고

사십구재가 열리는 절로 향했다. 절에 도착해서 정장으로 갈아입었는데,

내 옆에서 잠든 그 친구의 정장이었다.

상의 소매가 양팔보다 길었고, 허리를 두 번 접어도 계속 바지가 흘러내렸다.

사십구재 때 절을 그렇게 많이 한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내가 절을 할 때마다 바지가 흘러내렸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말없이 허리를

잡아주었다. 그때마다 앞에 계신 스님도 가까스로 웃음을 참는 느낌이었다.

가장 큰 난관은 아버지의 옷가지를 들고 태우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옷을 들고 걸어가고, 어머니는 뒤에서 내 허리를 잡고 걸었다.

 

그렇게 말없이 한참 걸어가다가, 어머니가 갑자기 내 등짝을 때렸다.

“너는 장례식 때는 작은 옷을 입고, 사십구재 때는 큰 옷을 입고,

네 아버지 웃기려고 작정을 했냐!” 그 말에 어머니도 나도 동시에 빵 터졌다.

분명 계속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났다. ‘내가 아버지를 이렇게라도

웃겨드리는구나. 살아생전 한 번도 못 웃겨드리고, 저 멀리 가시고 나서야

웃겨드리는구나.’

함께 걸어가던 스님은 갑자기 웃다가 갑자기 우는 어머니와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오늘이 지나면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향하시는데, 이렇게 웃겨드렸으니

가시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참 웃기는 아들이네요.” 그랬다.

살아계실 때는 못 웃겨드리고, 떠나실 때가 되어서야 웃겨드리는

나는 참 웃기는 아들이었다.

   

         <조선일보 오피니언(오세혁의 극적인 순간)중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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