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글

1%의 희망만 있어도

highlake(孤雲) 2013. 12. 29. 14:42

 


미국의 세계적인 사이클 스타 랜스 암스트롱

Lance Armstrong은 어린 시절부터 유달리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자전거를 구입할 수 없어
늘 옆집 아이들이 자전거 타는 것을 부러워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형은 자신이 모아 놓은 용돈

5달러로 갖은 우여 곡절 끝에 경매로 나온 자전거를

동생에게 사 주었다.

동생은 형으로부터 자전거를 선물 받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자전거를 탔다.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태어났는지 13세 때 어린이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여 우승했고 고등학교 졸업

직후 16세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로 사이클 선수로

데뷔했다. 그 후 꾸준히 실력을 발휘하여 사이클

선수로서 명성을 쌓아갔다.

25세 되던 1996년,
세계선수권을 앞둔 어느 날 그에게 청천 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고환암 진단을 받았고 암세포는 가슴과
뇌에까지 침투하여 생존확률 3%라는
담당의사의 소견까지 받았다.
사망신고와 같은 진단에도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암 투병을 하면서 암이 삼킨 한쪽 고환을

떼어냈다. 암은 머리까지 번졌고 그는 결국 뇌의

일부를 제거하는 3차례의 대수술을 받았다.
항암치료는 암세포뿐만 아니라 건강한 혈액세포

까지도 죽여 헤모글로빈 수치가 떨어졌지만 사이클에

대한 집념만은 절대로 놓지 않았다.

그는 이 때 마음 속으로 굳게 외쳤다.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기회로 삼자.
나에게 1%의 희망이라도 있거들랑 이를

붙들고 나가자. 강하게 살자."
그러면서 이를 악물고 암을 이겨내기 시작하였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구토가 치미는 항암치료를
이겨내며 몸무게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다시 페달을 밟는 재활 훈련을 시작했다.
16개월의 항암치료와 투병 세월을 이겨낸 그는
1998년 2월 사이클 세계로 당당히 복귀하였고,


이듬해 알프스 산맥과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프랑스 도로를 일주하는 죽음의 레이스라 불리는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서 주위의 예상을 뒤엎고

우승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이를 이겨내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그로부터 2005년까지 <투르 드 프랑스> 를 처음으로
7연패를 이루는 인간승리의 기적을 연출했다.

하와이 철인 3종 우승자인 마크 앨런은
'암스트롱은 일단 목표를 세우면,
한 몸에 50명분의 불굴의 의지가 똘똘 뭉쳐진다.' 고
말했을 만큼 강인한 정신력으로 병도
이기고 자신의 목표도 이루었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위대한 사이클리스트라고 칭한다.

암스트롱은 암을 이기게 된 동기에 대해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와 용기를 갖고 주위
환자들을 돌아보면서 암과 맞선다면
암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행동했다.' 고 한다.

굳세게 일어서려는 투지와 열정은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주는 멘토이다.
어려움이 다가오면 고통과 싸우는 법을
배워 이겨 나가야 한다.
절망에 빠져 있다면 희망을 다시 이어야 한다.
잃어버린 희망을 다시 찾아야 한다.

아무리 힘든 역경이 다가와도 무엇인가를
희망해야 한다.
절망스러워 도저히 희망과 소망이 없어
보일지라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이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몫을 해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올 테니까. 

                      -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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