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소설가
고통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육체적 고통이고 또 하나는 심리적 고통이다.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통증을 느껴야 비로소 치료 시스템이 작동한다.
한센병 환자는 감각이 없어져 고통을 느끼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손가락,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통증을 느낄 수 없다면 환자는 그 부위를
돌보지 않는다. 이때 통증은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보이지는 않지만 육체가 절단되는 것만큼 생존을 위협하는 건 집단으로부터
잘려나가는 것이다.
실직, 배신, 집단 따돌림 등 인간관계에 금이 갈 때 뇌는 이런 마음의 신호를
'아픔'으로 인식하고 통증으로 느끼게 설계돼 있다.
흥미롭게도 뇌 영상 사진을 살펴보면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이 같은 뇌
부위에서 발생한다. 미시간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인간은 막 헤어진 애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뜨거운 커피에 손을 덴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실연과 화상의 통증이 비슷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가정도 가능하지 않을까?
고통이 같은 곳에서 생긴다면 고통을 줄이는 방법도 같지 않을까?
가령 몸이 아플 때 먹는 진통제를 마음이 아플 때 먹는다면 효과가 있지 않을까?
놀랍게도 이에 대한 연구 논문이 있다. 매일 타이레놀을 복용한 집단은 다른
집단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상의 사회적 상처를 덜 느꼈다고 한다.
두통을 없애듯 진통제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회적 고통 역시 덜어줬다는
것이다. 역시 뇌의 세계는 언제나 신비롭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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