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스크랩

囹圄成市(영어성시)

highlake(孤雲) 2017. 4. 1. 13:46


새벽에 눈을 떴다. 머리맡 휴대폰을 찾아 인터넷을 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됐다는 속보가 떴다.

TV를 켜니 박 전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서울구치소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찍힌 사진을 얼마 후 봤다. 제목은 '헝클어진 올림머리에 잿빛 표정'.

사진에 딸린 이모티콘에 독자의 마음이 숫자로 표시돼 있다.

'좋아요' 2만건, '슬퍼요' 2000건. '환호'가 '탄식'의 열배다.

젊은 층의 분위기가 이럴 것이다.

▶새벽에 배달된 조선일보 1면엔 전날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검찰로

가는 박 전 대통령 사진과 동생 박지만씨 부부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지만씨는 국립현충원에 있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어떤 기도를 올렸을까.

이날 아침 남매는 3년 만에 만났다.

박 전 대통령은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함께 울었다고 한다.

최순실을 두고 "피보다 진한 물도 있다"고 했는데 그래도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인가.

한집안에서 일어나는 영욕(榮辱)의 교차가 기막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어제 많은 사람이 '영어(囹圄)의 몸'이란 말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박 전 대통령 구속을 그렇게 표현한 기사 때문인 듯하다.

'옥 영(囹)' '옥 어(圄)', 사각 감옥에 갇힌 형상을 표현한다.

박 전 대통령이 머무는 '영어'는 3.2평이라고 한다.

4년 동안 지낸 청와대 관저는 1800평, 삼성동 자택은 146평이다.

'영어의 괴로움은 하루를 지내기가 한 해와 같다'는 옛말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1440원짜리 끼니를 먹으면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재판에 임해야 한다.

▶사기(史記)와 수서(隋書)에 '영어공허(囹圄空虛)' '영어생초(囹圄生草)'란

말이 나온다. 감옥이 텅 비고 풀이 무성하다는 뜻이다.

태평성대란 얘기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감옥이 비었다'는 이유로 형조 관리가 상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반대말은 '영어성시(囹圄成市)'. 감옥이 저잣거리처럼 북적인다는

뜻이다. 지금 구치소엔 전직 대통령·비서실장·장차관·수석비서관이 다 모여

있다. 난세(亂世) 아니면 무엇인가.

▶초년 사회부 기자 때 서울구치소 앞에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으로 가는 모습을 취재했다.

그때도 어제처럼 "구(舊)시대의 끝"이라고들 했다.

인터넷이 있었다면 그때도 수만명이 '좋아요'를 눌렀을 것이다.

정말 그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22년 후 또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난세는 언제 끝날까. 단지 시간만 지난다고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조선일보 만물상에서 옮겨 온 글>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31/2017033103679.html